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명진학교와 경기도 남양주 사학명문 광동학원을 설립한 월초 스님의 업적을 재조명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월초문도회(문장 월운)는 10월 1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월초 큰스님과 근대 교육사업’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월초 스님 추모 74주기를 기념한 이번 행사는 신용철 명예교수(경희대)의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한동민 학예연구사(수원역사박물관), 김광식 교수(부천대)가 발표했다.
신용철 교수는 ‘한국 불교의 근대화와 교종(敎宗)의 본찰(本刹), 봉선사의 공헌’ 주제의 기조발표에서 월초 스님 시기의 시대적 사명과 스님의 업적을 설명했다. 신 교수는 “스님은 무너져가는 조선왕조 말 혼란기와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선각자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했다”며,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운암 스님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봉선사에 머물던 운암 스님에게 월초 스님은 “총칼을 들고 일본 놈들과 맞서 싸우는 것만이 독립운동은 아니다. 지금 이 나라에는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글을 모르고 배운 것이 없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배워 그 사람들을 가르치고, 분연히 떨쳐 일어날 수 있도록 계몽하는 것도 독립운동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월초 스님의 말에 운암 스님은 독립운동을 미루고 봉선사에 머물며 불교 교리를 배우고, 국민 계몽에 힘썼다. 3ㆍ1운동에 참가해 옥고를 치른 후에는,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하는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신용철 교수는 “월초 스님은 일제의 침입으로 야기된 혼란과 무기력 극복, 불교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대표적 스님”이라며, “1900년 국운의 안녕을 위해 수국사를 중건하고, 아관파천으로 위기가 고조되자 전국 각도의 사찰을 통하는 직제를 만드는 등 많은 업적을 세운 근대 불교의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한동민 학예연구사는 주제발표 ‘한국근대불교사와 홍월초 스님’에서 “월초 스님은 1927년 봉선사 주지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동안 받은 주지 월급을 봉선사에 환원해 모범적인 주지 상을 정립했다”고 말했다. 한 학예연구사는 “월초 스님은 올바른 승려ㆍ스승의 모습을 보여준 선지식”이라고 강조했다.
김광식 교수는 주제발표 ‘홍월초의 꿈, 그의 교육관에 나타난 민족불교’ 를 통해 월초 스님의 교육관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월초 스님은 조선시대 산중불교를 민족불교로 되돌리겠다는 원력으로 교육불사에 정진했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불교근대화를 추진한 불교연구회 회장 ▲명진학교(현 동국대학교) 교장(1905년) 및 이사장(1906년) ▲광동학원 설립 등 교육분야에 독보적 업적을 세웠다.
한편 월초문도회는 이번 학술회의를 시작으로 월초 스님이 건립했던 홍법강원 복원과 <수기집> 발간, 교육 및 학술 출판 사업 등 다방면으로 문조현양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