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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경 지음
예문서원 펴냄│1만8000원
물질의 시대, 불교는 어떤 깨우침을 주는가?
현대는 분별의 시대다. 반면 불교는 언어의 집착과 문자적 앎을 점증적으로 경계해 간다. 불교는 언어의 한계와 표현의 제한을 다른 어떤 사유체계보다 여실히 포착하는 수행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지눌 스님 이후 확립된 한국 선불교의 전통에서는 적극적인 부정을 통해 확고한 긍정의 언어관을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한다.
불교와 현대과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불교철학과 현대윤리의 만남>은 불교를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지 않는다. 불교를 불교 그 자체의 논리로 읽어 내고자 노력한다. 저자는 불교 자체의 논리로 불교의 기본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 곧 불교의 현대적 의미를 밝힌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불교를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묻는 이에게 권하는 현대적 불교 사유서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자아(自我)와 비아(非我)ㆍ무아와 유아ㆍ진아(眞我)와 가아(假我) 등 언어적 분별 속에서 윤회와 해탈ㆍ식(識)과 경(境)의 문제 등을 도마 위에 올린다. 무아와 윤회에 대해 논하면서 주체 없는 윤회라는 모순의 도식을 해명한다. 공(空)과 일심(一心)을 논하면서 유식의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저자 역시도 불립문자의 경계를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까닭에 불교를 언어로 풀어내는 데 발생하는 난감함을 글의 곳곳에서 피력한다.
저자는 “중생을 피안으로 건네 줄 수단은 결국 언와와 문자이다. 피안에 이른 뒤에는 버려져야 할 것일지라도 피안에 이르기 위해서는 언와와 문자의 배를 타야만 한다”고 말하면서 이 책을 써야만 하는 그리고 쓸 수밖에 없는 사명을 해명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란 언어와 문자로써 교(敎)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선종(禪宗)의 입장을 표명한 표어다. 경전 밖에 따로 전해지는 가르침인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바로 보아 부처가 되라는 의미다. 그러나 일상에서 흔히 말문이 막혔을 때 사용하는 ‘언어도단’은 사전적 의미로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저자는 이러한 오해를 해명하면서 불교에서는 말의 길이 끊어진 세계를 감싸 안는 진리의 깨달음으로 향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펼쳐 보인다.
저자가 불교적 관점으로 총 3장에 걸쳐 서술하는 선교겸수(禪敎兼修)를 통한 입선(入禪)ㆍ동양 불교와 서양 현대철학의 비교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생명 윤리와 생태학의 문제 등은 현대에 유용한 불교 논리학적 고찰을 통해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한자경은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칸트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철학 석사 및 박사를 받았다. 저서로 <칸트와 초월철학> <자아의 탐색> <유식무경> <일심의 철학> <불교철학의 전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