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수행’과 ‘깨어있음’을 강조한다. 수행하지 않는 불자는 결코 깨어있을 수 없고, 깨어있는 불자도 수행을 통해서만이 부처의 세계로 향한다. 수행의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에서 수행이 주목받은 시기는 근래의 일이다. 해방 후 기복불교를 거쳐 1990년대 종단개혁과 불교교양대학 출현 등으로 대변되는 교학불교는 부처님 법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붐을 형성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서야 출가자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수행이 재가자로 확산ㆍ대중화되며 수행불교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정토, 화엄, 선, 밀교 등 대승불교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대승불교의 수행에 관한 학술세미나가 열려 눈길을 끈다.
한국정토학회(회장 태원)는 10월 2일 중앙승가대 대강당에서 ‘대승불교에서의 수행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제11회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한국불교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발표했다. 기조강연한 태원 스님(중앙승가대)을 비롯해 정토학자인 보광 스님(동국대), 화엄학자인 도업 스님(동국대), 선학자 김호귀 연구교수(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밀교학자 종석 스님(중앙승가대)은 각각의 전문분야에서 수행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삼학은 불교 수행의 근간”
태원 스님은 기조강연 ‘대승불교에서의 수행의 문제’에서 “계ㆍ정ㆍ혜 삼학이 불교 수행의 근간”이라 주장했다.
스님은 “불교 기초교리부터 마땅히 배우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계ㆍ정ㆍ혜 삼학이 강조된다”며, “계의 수행으로 선정이 생기고, 선정에 의해 지혜가 있고, 이 지혜에 의해 수행의 목적지인 깨달음을 완성해 성불한다”고 설명했다.
태원 스님은 “삼학 중심의 수행이 부처님 당시부터 설해졌다”며 <잡아함경> 등을 인용해 전거를 들었다.
<장아함경>에서 부처님이 “모든 비구에게 이르기를 네 가지 깊은 법이 있다. 첫째는 성스러운 계(聖戒)요, 둘째는 성스러운 선정(聖定)이며, 셋째는 성스러운 지혜(聖慧)며, 넷째는 성스러운 해탈(聖解脫)로 이 법은 미묘한 것으로 알기 어렵다”고 설한 것이 삼학을 뜻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스님은 “해탈을 위해서는 삼학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삼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원인의 수행이며, 해탈은 수행의 결과”라 말했다.
<장아함경>의 지계(持戒) → 선정(禪定) → 지혜(智慧) → 해탈(解脫)로 이어지는 수행 차제가 대승경전인 <열반경>으로 이어졌다. 태원 스님은 “남방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인 위빠사나 수행도 계ㆍ정ㆍ혜 삼학의 체계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사분율> <오분율> 등을 인용해 “모든 율장이 말하는 계의 역할은 선법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며 계와 정 없이 관법이 가능하다는 일부 수행자의 견해를 비판했다.
태원 스님은 “삼학을 근본으로 지계와 선정, 지혜를 구체화해 육바라밀 수행 등 대승불교 수행법이 출현했다”고 주장했다.
◇‘믿음(信)’이 정토수행 핵심
‘정토교의 수행방법론’을 발표한 보광 스님은 “극락정토와 아미타불의 존재에 대한 믿음 없이는 극락왕생과 깨달음을 인정할 수 없다”며, “정토수행에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무량수경>의 ‘지심신락욕생아국내지십념(至心信樂欲生我國乃至十念)’ 구절을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자 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여 십념정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로 해석하며 라고 해석한 스님은, “지극한 마음으로 믿기만 해도 이미 모든 수행은 완성된 것”이라 설명했다.
◇화엄수행은 생활 속 실천
도업 스님은 주제발표 ‘화엄의 수행’에서 “화엄수행은 신해행증(信解行證) 가운데 ‘행(行)’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도업 스님은 “대승불교의 모든 실천행은 십바라밀로 귀결된다”며 십주(十住)와 십행(十行), 십지(十地), 십회향(十回向)을 십바라밀로 도식화해 설명했다.
스님은 “<화엄경>의 절반에 가까운 17품이 보살이 가야할 길(보살도)와 행해야 할 실천행(보살행)에 대해 설했다”며, 실천행이 진정한 보살행이 되려면 믿음과 발보리심(發菩提心)과 원(願)을 바탕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화엄수행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방편, 원(願), 력(力), 지(智)를 실천하는 지극히 일상생활적이며, 개개인의 행동규범”이라 말했다.
◇신심 없는 선수행 없어
김호귀 연구교수는 ‘조사선에서의 수행의 양상과 신심의 관계’를 발표했다. 김 연구교수는 “신심은 발심의 근원이며, 모든 보살행의 시작이다. 수행과 깨침을 위한 기초이면서 궁극적으로는 보살행의 완성”이라 강조했다.
김호귀 연구교수는 “신심은 보리달마에게서는 벽관수행으로 드러났다. 대혜의 간화선에서는 대신근(大信根)?대의단(大疑團)?대분지(大憤志)라는 화두참구의 모습으로 전개됐다. 굉지의 묵조선에서는 본증자각(本證自覺)이라는 본래 믿음(本來信)을 바탕으로 지관타좌(只管打坐)의 좌선수행으로 성취됐다”고 정리했다.
◇밀교수행 바탕은 보리심
종석 스님은 ‘밀교의 수행’을 <보리심론>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보리심론>은 발보리심(發菩提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을 설한 밀교의 수행지침서다.
스님은 “밀교는 불교의 완성이다. 밀교의 수행법은 중관과 유식의 알라야식, 여래장 사상을 계승ㆍ발전시켰다”며, “밀교의 키워드인 즉신성불을 위해서는 보리심이 필수”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