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순 수녀(사랑의시튼수녀원 책임수녀)
주제 : 영성과 코칭
기획ㆍ주최 : 미내사클럽
일시 : 2008년 9월 27일
장소 : 연세대학교 제3공학관 대강당
후원 : 동사섭, 하비람, 카네기연구소, (사)한국코치협회
첨단의 세계, 변화의 기법을 체득하라
신과학과 의식세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해 온 ‘미내사클럽(www.herenow.co.kr)’ 주최 ‘제12회 취산(翠山) 국제신과학심포지엄’이 개최됐다. 물질과 정신이 둘이 아니라는 관점으로 모든 과학 분야를 성찰하고 그 근거를 찾아 연구하는 첨단 정보의 국제교류장이다. 이 날 행사는 코칭(Coachingㆍ미래지향적인 삶의 기술)을 통해 인간 근본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는 계기로 삼는다는 취지다. 연사 또한 20여 년 이상 사람과 삶의 근본변화를 위한 작업을 화두로 삼아 온 이들이다. 각 종교에서 진행되는 의식변화 수련의 지도자들이 제안하는 영성 수련은 무엇일까? 그들로부터 삶의 변화를 모색하는 코칭의 기법을 전수받아보자.
# 용타 스님: 근본적인 변화-순수의식 돈망(頓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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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도 세상을 창조하고 둘러보니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당신이 창조한 이 세상이 모두 진리라는 것과 통합니다. 도가 통하는 순간 세상의 시시비비가 느슨해지고 사라져 버립니다. 일체가 문제될 것이 없어진 것이죠.
내가 나의 주관성을 제치고 보면 세상만사는 여여합니다. 세상 자체는 분별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금씩 점진적으로 파고들면 도통의 경계에 근접해 해오(解悟)합니다. 이미 의식의 여부에 관계없이 순수 의식이 있었습니다. 정작 본인만 그 의식을 수긍하지 못합니다. 순수 의식을 유별난 체험으로 오해한 이유입니다. 순수 의식 체험이 어렵다는 신념을 버리십시오.
마음속 모든 고통과 사회적인 모든 싸움의 뿌리는 바로 집착입니다. 집착은 이따금 성취의 기쁨을 주지만 거의가 좌절의 분노로 점철됩니다. 집착은 왜 하게 될까? 대상에 대한 바른 이해의 부족 때문입니다. 집착과 분노 그리고 이해부족의 어리석음은 정화하는 삶이냐 여부에 따라 바람직한 삶의 기준을 세우게 합니다. 크나큰 해탈과 자비가 인격으로 드러난 상태를 구경각(究竟覺)이라 합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구경각이란 행복의 극점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원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ㆍ해탈ㆍ구원입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건 끝내 그것은 마음으로 귀결됩니다. 참으로 마음의 해탈을 원하는가? 진실로 원하는가를 날카롭게 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현재 사람으로 태어난 나의 영성은 잘 유지돼야 합니다. 지금 갈고 닦아야만 후생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해탈의 길을 찾았느냐? 그 길은 너무 많습니다. 해탈의 길을 걷고 있느냐? 진정 해탈하고 싶고 그 길을 걷고 있다면 해탈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장애는 여러분의 지성입니다. 개념이죠. 삶의 편리한 도구인 개념은 옳지만 그 개념에 휘둘리면 옳지 않습니다. 중독된 지성의 테두리 안에서 해탈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항상 반 컵의 사이다입니다. 불행하려면 반 컵 밖에 없다고 하면 됩니다. 반 컵 이나 있다고 한다면 행복 99%가 확정됩니다.
행복의 원리는 ‘행복이란 소유에 비례하고 욕구에 역비례’합니다. 물 온도 99°c는 물의 물질적 한계에 머물고 나머지 1°c를 채우면 무한의 물질로 해방됩니다. 행복이 무한대 되기 위해서는 욕구 제로가 되는 길 뿐입니다. 1/0은 무한대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무한 행복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란 무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손을 치우니 허공이 보입니다. 허공마저 치워 버리십시오. 유한에서 무한으로 열리는 세상이 보입니까? 그것이 진실입니다. 물감을 완전히 빼낸 원단이 보입니까?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소유하려 하지 말고 계속 가감해 보십시오. 나의 원단 나의 자성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 김종순 수녀: ‘향심기도’-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없는 상태로의 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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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내 안에 있습니다. 두려움(불안)의 뿌리도 내 안에 있고 그 불안함에서 나를 데리고 나갈 근원적 사랑도 내 안에 있습니다. 나를 허상과 망상 안에서 살게 하는 비참함의 원인 ‘거짓 자아’도 내 안에 있고, 진정한 나 ‘참 나’로 거듭 나게 할 생명의 원천 하느님도 내 안에 있습니다.
미국 트라피스트 수도승인 토머스 키팅 신부는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통 안에서 이어져 온 관상기도를 현대인들의 심성에 맞게, 또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향심기도입니다.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는 거룩한 독서로 생겨난 그리운 마음을 가지고 관상으로 향할 때 관상에 이르도록 돕습니다.
토머스 머튼은 “하느님을 만나려면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향심기도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향하도록 (centering) 우리 ‘영혼의 심연’에 도달하도록 즉, 그 중심에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일구도록 돕는 훈련이며 동시에 기도입니다. 침묵이신 그 분을 침묵을 통해 전 존재로 듣는 방법이지요. 존재의 중심에 이르러야 우리의 참 자아를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함으로써(doing)가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놔둠(being)을 통해 존재의 중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향심 기도는 주의를 집중(attention)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하느님께 맡기려고 지향(intention)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의 핵심은 지향입니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고 내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자신을 하느님께 동의해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분의 현존과 활동에 나를 열어 드리고 승복(consent) 해 가는 수행법입니다. 그런 면에서 수동적이며 동시에 아주 수용적인 기도이지요.
영적 여정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아 가는 여정, 도망가지 않고,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고 직면해 가는 여정, 그리고 전인적 치유자이신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 맡겨 드림으로써 그분이 치유해 가시도록 하는 여정입니다. 향심 기도는 그 과정을 촉진시키는 하나의 수행 방법이면서 기도입니다.
우리 각자 안에는 누구도 막아낼 수 없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그리움은 그분을 기억하도록 하느님이 우리 마음 안에 감추어 두신 흔적입니다. 한 두려움이 사랑을 만나 장애물이 치워지는 여정, 한 그리움이 그 그리움의 본향을 만나 ‘사랑’이 되는 것 그것이 영적 여정이지요. 지금, 여기를 온 마음으로 걸림 없이 사랑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영성이지요.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기를, 그렇게 걸림 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