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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석양에 물들고 부처님은 아득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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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엔 붉은 동백꽃이 좋았던 땅 끝 도량 미황사. 계절이 계절을 보내고 도량에는 코스모스가 피었다. 땅 끝으로 밀려온 더운 바람이 꽃잎을 스쳐 가을바람이 되고, 사연 많은 달마산 기슭에는 단청도 없이 고운 대웅보전이 금빛 햇살에 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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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고, 의조 스님은 그날 밤 꿈을 꾼다. 배를 타고 온 금인(金人)은 싣고 온 불상과 경전을 모셔 달라며 검은 돌에서 나온 소를 따라 가라한다. 그리고 금인의 말대로 스님은 소가 누운 자리에 절을 짓는다. 그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워 ‘美’자를 쓰고 금인의 색깔에서 ‘黃’자를 따왔다. 미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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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서 밥 냄새가 피어오른다. 후원을 지나 오솔길을 걸으니 부도암이다. 부도전 풀밭에는 푸르던 강아지풀이 가을빛을 머금고, 이끼 낀 부도에는 삶의 끝이 가져다준 깨달음의 이름들이 가을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어느 날 홀연히 동쪽으로 간 달마 스님의 부도도 여기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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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루 너머로 석양이 번진다. 법당 앞을 지나던 학인 스님이 부처님께 합장을 하고, 법당의 부처님은 석양에 물든 바다를 바라보며 아득한 꿈을 꾼다. 금인이 노를 젓고 돌배 하나가 떠나간다. 눈부신 바다 위로 소울음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