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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세계한국학대회가 9월 21~23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렸다. ‘세계와 소통하는 한국학’을 주제로 열린 대회에서 세계 20여개국 150여 한국학 전문가들은 한국학 연구성과를 교류하고 소통하며 한국학 미래를 조명했다.
이번 대회에서 기조강연한 로버트 버스웰 교수(美, UCLA 교수)를 비롯해, 예술과 종교분과 등에서 다수의 불교학 관련 연구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동아시아 불교 연구 역발상 필요”
“한국불교는 신장과 티베트 등 한반도에서 먼 지역까지 전달되며 중간자 역할이 아닌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 한국불교가 동아시아 문화형성의 중심이 된 것은 한국 승려의 자기동일성이 있어 가능했다.”
9월 21일 제4회 세계한국학대회 개회식에서 ‘동아시아에서 본 한국 불교’를 주제로 기조강연한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불교전파의 중간자로 인지됐던 한국을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주체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스웰 교수는 8월 14일 국제교류재단(이사장 임성준) 조찬 포럼에 참석해 ‘미국내 한국학: 현황과 향후 과제’ 제하의 연설에서 한국을 ‘동아시아의 페니키아(서양의 해상교통로)’라며, 한국의 동아시아내 역할을 강조하는 등 한국 중심의 통합적 동아시아 연구를 주장해 온 친한(親韓) 불교학자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인도와 중국에서 시작해) 일본을 종착점으로 하는 관점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며, “중심에서 시작해 변방을 둘러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 등 특정변방 지역 불교사상이 전체 동아시아 불교사상 전통에 미친 영향을 살피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아가는 시각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포교승들이 불교 등 중국문화를 한반도에 유입시킨 사실에서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한국 승려들의 역할에 주목했다.
버스웰 교수는 “불교가 동쪽으로 전파되는데 한국의 역할이 지대했다”며,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백제의 역할은 19세기 서구문화 만남에 이은 일본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영향을 준 사건”이라 평가했다. 그는 “7세기 일본에 건너간 백제승려 관륵을 비롯해, 원효, 법위, 현일 등 한국 승려들 영향으로 일본 교단의 전통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일본 정토교 특징인 아미타불 48서원 중 강조된 18~20번째 서원과 정토에 자력 왕생할 근거로 18번째 서원을 내세운 것도 신라불교의 영향”이라 말했다.
한국 승려의 문화포교는 일본에 그치지 않았다. 버스웰 교수는 “한반도 여러 항구가 동아시아 상권의 허브 기능을 하면서 한국 승려들도 무역상과 함께 중국을 수월하게 드나들었다”며, 중국 동부 연안에 치외법권지역처럼 형성됐던 신라방(신라인거주지)을 예로 들었다.
혜초 스님 등 구법승들은 불교 전파와는 반대로 신라에서 중국을 지나 인도까지 순례하며 동아시아 곳곳에 사상을 전했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의상, 원효, 경흥 스님의 저술이 중국과 일본에서 큰 찬사를 받으며 중국 화엄종 개종조인 법장 스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며, “한국과 중국 승려들이 저술한 서적은 당시 여느 정보보다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동아시아 전 지역의 학승과 지식인들에게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버스웰 교수는 저서 <중국과 한국의 선 이데올로기 형성(The Formation of Ch''an Ideology in China and Korea)>에서 <금강삼매경>을 선불교 전통을 형성한 중요저술의 하나로 지목하고, <금강삼매경>이 한국 선불교 주창자들에 의해 한국에서 쓰여진 위경(僞經)이라 주장했었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맥이 선불교가 독립적으로 사상적 기반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이심전심을 설한 <금강삼매경>은 한국에서 저술된 후 중국으로 전해져 일본과 티베트에 유포된 변방에서 중심에 영향을 준 하나의 예”라고 강조했다.
한국 승려가 전달자 역할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 출신으로 추정되는 승랑 스님은 중국에서 활동하며 삼론종 시조로 인도 중관학파 중론 사상가들과 대적할 만한 인물로 알려졌다. <해심밀경소>를 저술한 신라출신 원측 스님은 중국 유식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해심밀경소>는 티베트 왕 랄파첸의 명으로 티베트어로 번역됐을 만큼 원측 스님은 티베트에서 ‘위대한 중국 주석가’로 이름을 떨쳤다”고 말했다. 버스웰 교수는 “중국 불교 고전 중 하나인 <천태사교의>를 저술한 고려 출신 체관 스님과 의천 스님 등이 천태종 부활에 크게 관여했다”며, “규봉종밀에게 이어진 정중선도 김화상으로 불리던 무상 스님이 있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승려들은 한자로 된 법명 탓에 중국출신으로 구분된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한국 승려들은 ‘한국 출신’이라기보다 승단과 종파의 계통 속에 자신들의 존재를 자리매김 해왔다. 이 같은 전통 때문에 국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의 견해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국수주의 개념인 ‘현대사에서 이뤄진 일그러진 이미지’보다 폭넓은 견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근대 이전의 한국 승려들은 ‘한국승려’라기보다 승단과 종파의 계통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자리매김했다는 로버트 버스웰 교수의 주장은 6세기 저술인 <고승전>에 ‘한국승려’ 등이 아닌 ‘불제자’, ‘스승’, ‘교학승’, ‘선승’으로 분류된 사실로도 증명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한자문화권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문화적 자기 충족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버스웰 교수는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와 ‘팔관회’ 등을 예로, “한국은 중국에 문화적 종속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한국 승려들은 인도와 부처님에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법통을 갖고 그 안에 귀속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교의 원류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며, “한국 승려들은 변방의 수용자에 그치지 않고 (인도, 중국 등) 중심에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주제 불교학 관련 발표 줄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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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예술과 종교 분과 등에서 다양한 불교학 관련 주제가 발표됐다. 예술 분과에서는 예술사학자인 매치 베어트릭스 교수(헝가리, 에트바쉬대)와 전인평 교수(중앙대) 등이 발표해했다. 베어트릭스 교수는 ‘신비한 고독한 성자: 한국 독성(獨聖)상의 표현과 자각’에서 “도상을 살폈을 때 독성은 아라한 가운데 하나인 빈두로 존자(16나한 중 제1존자)”라 주장하며, 동북아 불교문화에서 독성의 위상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전 교수는 ‘밖에서 본 영산회상’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한국 음악의 대부분이 다른 나라 음악과 교류하면서 발생됐으나 영산회상만이 유독 다른 구조를 갖췄다”고 말했다. 전인평 교수는 “아시아지역 음악 장단은 하나의 리듬형이 속도에 따라 기본틀을 유지하며 변화한다”며, “영산회상 원곡은 가락덜이로 6박 도드리 장단을 원형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 분과에서는 박사과정 재학 중인 신진 학자들의 참여가 눈에 띄였다. 구세웅(美, 스탠포드대)씨와 베네타 바바노바(한국학중앙연구원)씨는 각각의 주제발표를 통해 사회를 맡은 한형조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와 안토니오 도메넥 교수(스페인, 말라가대) 등 기성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펼쳤다.
구씨는 주제발표 ‘오대산의 공간적 구성’에서 “오대산은 지방세력의 정치적 활동을 정당화한 외곽종교성지”라며, “오대산의 공간적 구성은 종교적 현실을 바탕에 둔 현상”이라 강조했다.
‘불국사와 석불사의 보존역사에 관한 검토’를 발표한 바바노바씨는 사료비판과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얻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보존과정을 연대기순으로 정리해 설명했다.
한편 세계한국학대회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2002년부터 격년으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한국학 학술대회다. 제1회는 ‘한국문화속의 외국문화-외국문화속의 한국문화’를 주제로 서울에서 열렸다. 2회와 3회는 각각 2005년과 2006년 ‘화해와 협력시대의 한국학’과 ‘문화교류의 역사와 현실-실크로드에서 한류까지’를 주제로 북경과 제주에서 개최됐다. 올해 대회는 일본 규슈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간 난기류가 형성됨에 따라 서울에서 열렸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1993년 UCLA에 최초로 한국학센터를 설립하면서 한국불교 등 한국학을 세계에 알려왔다. 한국 불교를 미국 등 영어권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8월 불교계 최고의 상으로 꼽히는 만해대상(포교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4년부터 5년간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 제자로 승려 생활도 했던 버스웰 교수는 세계적인 불교학자이며, 2004년 <불교학 사전> 발간에 이어, 1991년에는 보조국사 지눌의 사상을 영문으로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