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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응오 지음
아름다운인연 펴냄│1만2000원
카라멜 향기 가득한 팝콘을 들고 푹신한 의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차가운 스크린에 모든 감각을 의지한다. 변방에 머무는 다양한 군상들이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불꽃같은 시절을 펼쳐 보인다. 2시간 남짓한 현세의 시간에 농축된 이들의 파노라마에 자아를 투영해 본다. 팔만 사천 가지 무진한 인생사 가운데 또 다른 내가 그 안에 있음을 발견하는 동시에 내가 숨 쉬는 이 시대를 읽어낸다. 이렇듯 영화는 언제부턴가 삶과 동의어가 됐다. 그것은 영화가 바로 인간을 주제로 하기 때문이다. 책 <영화, 불교와 만나다>는 다양한 인간과 삶을 불교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채롭게 비추며 대담한다.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변함없는 ‘영화의 사명’이 있다. 영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해왔고 앞으로도 변함없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죽음이 행복한 결말이 아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주인공이 선택한 최선의 희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꿈의 공장’에 비유한다.
무지의 캔버스에 풍경을 담듯 회화는 사진이란 장르로 진화해 세상의 순간순간을 기록해 왔다. 뒤를 이어 어둠상자 안에 빛을 나열하는 문명의 이기와 조우하며 비로소 영화는 탄생됐다. 빛과 잔상의 예술이 펼치는 영화는 시대의 이념과 정치ㆍ경제 그리고 수많은 작가의 고뇌와 정열을 고스란히 담으며 흡사 마르지 않고 샘솟는 기나긴 강처럼 200여년의 시간을 유유히 때론 격동적으로 흘러왔다.
“당신은 어떤 것이라도 영화에서 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신은 표현된 모든 것을 변호해야 한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1930~)의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고다르의 말이 이 한 권의 책에 주목하게 한다. 감독이 미처 의도하지 못했던 사각지대를 자가당착적인 진술로 발견해 가는 저자의 사유방식 때문이다. 불교라는 또 하나의 프레임으로 가득 차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저자 나름의 방식이 머뭇거림 없다.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선별된 영화 52편은 불교 소재의 영화뿐만 아니라 예술영화와 대중영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영화, 불교와 만나다>가 영화와 불교가 만나는 접점의 축으로 삼는 것은 ‘갈등’이다. 감독의 마음을 대변한 카메라의 렌즈가 포착한 세상을 무대로 인물은 사건의 기승전결을 밟아간다. <화엄경>의 ‘온 세상이 오직 마음뿐이니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도 실은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을 확인하듯 조곤조곤 인물을 쫓는다. 그리고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인용하며 ‘현상으로서의 존재는 이미 어떠한 개시의 조건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 자신이 하나의 개시가 된 것이며 하나의 나타남이다’라고 강조한다. 이렇듯 저자는 영화감독이 그려낸 풍경의 잔상을 불교와 철학 심지어는 문학과 심리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적 기반으로 파헤쳐간다.
저자는 영화와 불교를 한자리에 놓고 ‘성찰’이라는 주제로 화합한다. 주제별로 나누어 그 속에서 연기사상ㆍ유식학ㆍ화엄학ㆍ여래장 사상ㆍ선(禪) 불교를 용해하며 최종적으로 “영화란 무엇인가?”를 되돌려 자문한다. 영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서 그 틀이 진화된다 하더라도 저자가 변함없기를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희망과 인류를 향한 연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