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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재는 부처님의 영취산 법회를 그대로 재현해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다함께 부처님 참 진리를 깨달아 이고득락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의식으로, 음악적ㆍ무용적 요소와 더불어 연극적 요소 등이 예술적으로 어우러진 하나의 종합예술이다.” - 영산재보존회 총재 구해 스님
영산재(靈山齋)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던 영산회상을 상징화한 불교의식이다. 불교의식의 백미로 손꼽히는 영산재는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 후 태고종을 중심으로 보존ㆍ전승돼 왔고, 최근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활발히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영산재보존회(총재 구해)와 옥천범음대학(학장 일운) 등이 9월 19일 신촌 봉원사 범음대학 세미나실에서 ‘불교예술과 영산재’를 주제로 개최한 제6회 영산재 국제학술세미나는 영산재의 학술적 재조명을 통해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위한 이론적 기틀을 마련해 눈길을 끈다.
세미나에는 홍윤식 명예교수(동국대), 양은용 교수(원광대), 서한범 교수(단국대) 등 국내학자와 맥스 피터 바우만 교수(독일, 뷰르츠부르크대), 마쯔오 코이치 교수(일본역사민속박물관) 등 해외학자가 발표했다.
#“불교적 아름다움은 신심 고양 위함”
홍윤식 명예교수(동국대)는 기조강연 ‘불교예술과 영산재’에서 불교적 아름다움이 영산재에서 어떻게 표출(상징)됐는가를 설명했다. 홍 명예교수는 “불교적 아름다움은 불교적 신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름다움이며, 불교예술은 불교적 아름다움이 불교의식을 통해 표출되는 예술양식”이라 말했다.
영산재는 한국불교신앙의 종합예술이다. 홍 명예교수는 “영산재 가운데 영산작법은 법화신앙에 근거했고, 영혼천도의식은 정토신앙에 근거했다. 식당작법은 선종의례에 속한다”고 분류했다.
홍윤식 명예교수는 영산재의 미적 근원을 <아미타경> 등 정토교 경전에서 찾았다. “<아미타경>에서 보이는 극락(極樂)이 즐거움의 극치를 뜻하며 범부 중생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고 심미감을 느끼게 해 극락왕생의 신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홍 명예교수는 극락과 함께 <무량수경>을 전거로 불교적 아름다움을 해석했다.
홍윤식 명예교수는 “무량수불이 일체중생의 고통에 대비심을 일으켜 48대원을 세우고 그 정토를 장엄 성취한 것이 <무량수경>”이라며, 48대원을 통해 불교적 아름다움은 미추(美醜)를 포용한 아름다움이라 설명했다.
홍 명예교수는 불교예술을 ▲불교적 가치를 목적으로 하고 예술적 가치를 부수적으로 하는 것 ▲불교적 현상을 소재로 예술적 요구에서 창작된 것 ▲불교적 가치가 예술적 가치가 같은 강도로 주장된 것으로 나눴다. 그는 “영산재가 불교적 가치를 목적으로 하되 예술적 가치를 부수적으로 하거나, 불교적 가치가 예술적 가치가 동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윤식 명예교수는 “성스러운 공간과 시간에 몰입해 그 세계를 체험하고 귀의해 표출하는 것이 불교예술”이며, “영산재도 절차상 성역화의 상징적 표현을 중첩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홍 명예교수는 “성역화의 상징적 표현을 위해 불교의식에서 의식문 낭송, 의식공간 장엄?신체적 표현, 절정에 이르기 위한 긴장관계 구성 등이 사용된다”며, 영산재에는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 “영산회상은 국악 연구의 보고”
서한범 교수(단국대)는 ‘영산회상의 음악적 가치’에서 영산회상을 세 종류로 분류하고 각각의 특징을 살폈다. 서 교수는 “영산회상은 연주형태에 따라 ▲현악영산회상 ▲관악영산회상 ▲평조회상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현악영산회상은 거문고, 가야금 등 현악기가 중심으로 편성돼 붙여진 이름이다. 현악기 중에서도 거문고 중심으로 ‘거문고 회상’으로도 불린다. 서한범 교수는 “일반적으로 영산회상은 현악영산회상을 뜻하며, 민간음악인들은 현악기 중심의 합주음악이란 의미로 ‘줄풍류’라고도 부른다”고 소개했다.
현악영산회상은 제1곡 상령산(上靈山), 제2곡 중령산(中靈山), 제3곡 세령산(細靈山), 제4곡 가락덜이(加樂除只), 제5곡 삼현도드리(三絃還入), 제6곡 하현도드리(下絃還入), 제7곡 염불도드리(念佛還入), 제8곡 타령(打令), 제9곡 군악(軍樂)으로 구성됐다.
‘관악기를 위한 영산회상’이라는 의미의 관악영산회상은 삼현영산회상으로도 불린다. 관악영산회상은 영산회상 중 제6곡인 하현도드리가 생략된 8곡으로 이뤄졌다.
영산회상을 4도 아래로 조옮김한 평조회상은 ‘유초신지곡(柳初新之曲)’이란 아명이 있다. 악곡수는 관악영산회상처럼 제6곡 하현도드리가 생략된 8곡 구성이다.
서 교수는 “최초 단일곡이었던 영산회상이 9곡 모음곡으로 확대됐고, 세 갈래로 분화돼 레퍼터리 확충이나 연주형태의 다양성을 이루어 왔다”며, “특히 독주의 경우는 기존틀을 벗고 휠씬 자유롭게 연주된 악곡으로 재구성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서한범 교수는 “영산회상은 변주 악곡을 싣고 있는 고악보들의 기보체계나 기보방법, 변천과정, 풍류문화 등 국악의 실체나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며, “영산회상은 한국음악의 이론적 연구를 위한 자료의 보고(寶庫)”라 강조했다. 이어 서 교수는 “영산회상의 전체적인 악곡 수와 연주형태 등으로 볼 때, 영산회상이 국악계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 주장했다.
서한범 교수는 “영산회상은 자유스러움과 신비감이 우뚝한 음악, 유려한 선율선의 특징을 지니면서 감정의 절제를 이상으로 삼는 높은 차원의 음악”이라고 극찬했다.
#“팔관회는 호국의례”
양은용 교수(원광대)는 ‘팔관재의 한국적 전개’를 발표했다. 팔관회는 재가신자들이 팔재계를 수지하는 불교의례다.
양 교수는 “팔관회는 불교 흐름을 따라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고구려에 수용된 다음, 진흥왕 때 고구려 귀화승 혜량을 통해 신라에 유입돼 전몰장병의 위령제를 겸한 호국제전으로 설행됐다”고 소개했다.
양은용 교수는 “당시는 화랑이 활발히 활동했던 때로 팔관회 의식은 화랑들이 주도했다”고 추정했다. 고려시대 팔관회는 치세의식과 관련해 정치적인 색채를 띄게 됐다. 양 교수는 이를 팔관회적 질서라 부르며, “임금이 되면 팔관회를 개최하는 것이 아니라 팔관회를 개최하는 존재가 임금이라는 등식”을 설명했다.
#독일, 태국, 일본 등 해외학자 참여 줄이어
이번 행사에는 해외학자들의 참여가 눈에 띄였다. 맥스 피터 바우만 교수(독일, 뷰르츠부르크대)는 ‘세계 평화와 세계적 관심의 관점에서 본 불교음악’을 발표했다. 바우만 교수는 “영산재는 영취산의 법화경 법회(영산회상)에 대한 회고와 재현이 개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음악”이라며, “어떤 종류의 음악이든 그것이 불교정신과 화합하기만 한다면 세계의 모든 국가와 중생에게 유익할 것이며, 세상 모두를 위해 위대한 평화와 행복을 공헌할 것”이라 주장했다.
마쯔오 코이치 교수(일본역사민속박물관)는 ‘불교의례와 한일비교, 그 구조와 예능’을 통해 한일 불교의례가 대동소이함을 주장했다.
마쯔오 코이치 교수는 “현행 영산재는 현교적인 의식과 주악ㆍ무용을 중심으로 진행하면서도 진언ㆍ범어를 사용하여 밀교적인 요소도 엿보인다. 선종적인 식당작법과 무속적인 요소도 확인된다”며, “영산재에는 기원이 다른 모든 작법이 중층적으로 보태져 구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마쯔오 교수는 “영산재에 사용된 종이 인형은 일본 이자나기류처럼 민간종교에서 사용된 예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영산재의 식당작법과 일본 동대사 오미츠토리가 유사하다”며, “한국과 일본의 식당작법 모두 선종적 성격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마쯔오 교수는 “본존에 올리는 공양물 형태를 예로 고대 일본 불교의례가 한국불교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신촌 봉원사는 매년 단오날(음력 5월5일)이나 현충일(양력 6월 6일)이면 영산재를 시연해 불교문화의 대중적 친화도를 높여왔다. 올해 20회에 이른 시연회가 대중들에게 불교문화를 알려왔다면, 매년 개최한 학술세미나는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발표를 통해 영산재를 매개로 세계 불교문화의 이론적 토대를 다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