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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순 지음
예문서원 펴냄│2만원
한반도 최초의 비구니는 누구일까?
고타마 싯타르타의 이모 마하빠자빠티(Mahāpajāpati). 그녀의 출가로 승가의 비구니 역사는 시작 됐지만 정작 한국불교 비구니의 초석이 어떻게 놓여 졌으며 어떠한 삶을 살다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몇몇 학술대회에서 소주제로 다루어질 뿐 공통의 연구주제로 심화된 사례가 드물었던 원인도 클 것이다. 그만큼 비구니가 주목을 받기란 어렵고 조심스러웠던 것이 한국 불교사의 어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강력한 고립 속에 베일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던 한국불교 비구니의 1700년 세월을 면밀히 조망한 <비구니와 한국 문학>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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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비구니(比丘尼, bhiksuni).
문학에 나타난 여승의 존재는 연구가치적 측면 이외에도 특수한 신분이 지닌 정체성에 있다. 저자는 “비구니를 묘사하는 데 일정한 문학적 기법이 반복ㆍ유형화 되어 그 특징과 배경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면 그들이 처했던 사회현실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예 기교 상 작가가 지닌 주제 의식과 시대 현실 속에서 비구니가 처한 위치와 화두는 사회의 통념이라는 관계 속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출가수행자와 여성이라는 성의 양면성을 한국 문학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다양하게 고찰한다’는 것이 한국문학으로 바라본 비구니사의 남다른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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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거론하는 지혜와 자비의 복합적인 관계를 다룬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감독 임권택ㆍ1989)’는 편린으로 존재해 온 변방의 비구니를 대중의 곁으로 끌어들인다. 보살도의 만행으로 그려지는 수행자라는 이름의 군상들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가 된다. ‘인간이 피와 살로 만들어진 살아 있는 존재임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않는 한 어떠한 수행자도 진정한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 견성성불을 통한 완벽한 해탈도 없다’는 것이 비구니를 통해 투영한 한국 사회의 현실과 대안이다.
<비구니와 한국 문학>은 비구니에 대한 일반적인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궁금증을 심화하고 증폭시키면서 고뇌하는 구도자임과 동시에 혼란한 시대의 귀의처로 어머니이기를 자처한다. 삼국시대로부터 현대 문학에 이르는 비구니의 초상이 지닌 고결함의 족적을 따라 은둔의 베일을 벗고 동행해 보자.
저자 이향순(미국 조지아대학교 비교문학) 교수는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명멸해 간 비구니들 삶의 궤적을 찾으며 이 땅에 말없이 수행의 향기를 남기고 간 모든 비구니들에게 이 책을 헌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