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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은 시인의 등단 50년을 기념한 그림展 동사(動詞)를 그리다가 9월 12일까지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선보였다. 사진=박재완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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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의 감개를 계속 기억할 지라도 시인은 내일이면 오늘을 잊을 것이다. 내일의 감격으로 새로운 내일의 시를 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감격을 간직해 내일의 기억으로 보존하고자 한다.”
1958년 등단 이래 시ㆍ소설 등 150여 종의 저서와 15개 언어로 30여종의 번역 시집을 출간한 문학의 거장 고은(75). 그의 등단 50년을 기념한 그림展 ‘동사(動詞)를 그리다’가 9월 12일까지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선보였다.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35점의 작품과 먹으로 그린 삽화·붓글씨·병풍 등이 함께 전시됐다. 대한민국예술원(회장 김수용)에서 선정한 2008예술원상 문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을 뿐만 아니라 신작 107편을 묶은 시집 ‘허공’도 더불어 출간된 영광의 자리였다.
허공과 백지에 대한 시인의 천착은 무한의 캔버스를 예외로 두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이러한 영역을 “인간적 해석 영역에서 벗어난 자유의 공간”으로 평가했다. 라르스 바리외 주한 스웨덴 대사는 축사를 통해 “고은은 한반도 유구한 역사의 에너지를 전하는 시인이자 화가다. 행동을 절제한 묘사로 독자적이고 적극적인 상상을 시도해왔다. 그는 시로서 불을 점화하고 독자를 통해 활활 태운다. 시를 통해 사회 전반 구조를 투영하는 작업을 펼쳐온 그는 대가중의 대가”라고 칭송했다.
문학의 영역은 선사의 선시처럼 단문으로 간결하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붓끝의 형형색색은 고흐의 인상주의처럼 즉흥적이다. 연필이 아닌 물감을 붓끝에 듬뿍 찍어 생명을 드리운다. 시인은 “눈부시다”는 표현으로 감격을 대신하며 “강원도 두메산골의 가는 물줄기가 큰 강이 될 줄 몰랐겠지요. 더구나 그 강이 바다를 만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을 것입니다. 흐름은 하나의 무지입니다. 그런 자연의 무지를 본뜬 것이 나의 작업이 됐지요. 동료와 술자리에서 답답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말한 것이 오늘의 법석이 됐지요”라며 특유의 어투로 동료와 가족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시인이 스스로를 당돌하게 여기듯 그의 작업은 유채의 작업으로 화폭에 드리워질 것이다. 오늘은 내일의 연장이라고 강조하는 시인의 말처럼 “나는 그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그 어드매’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 그의 평생 화두다. 시인 고은에게 있어 시는 형상이 없는 그림으로 그림은 형상 있는 시로 반조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