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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소중한 자식과 같거늘 안락의 성으로 함께함이 그토록 어려울까. 누가 기르고 보호해 이들을 뭇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할까.” <보성론> ‘일체중생유여래장품’ 반야바라밀의 대비행이다. 자식과 같이 애지중지한 연민의 대상이 있어 범부의 대지로 되돌아와 보현행을 조복함에 대한 비유다.
실제 방편력으로 정진을 발하고 견고한 마음을 일으켜 깨달은 바 몸소 실천으로 회향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신림동 해돋이 길을 따라 주택이 밀집한 곳에 정갈하게 자리한 정혜사가 바로 그 곳. 성보 스님(정혜사 주지)을 지휘자로 기원 스님(27ㆍ중앙대 예술대학원 음악과 전공ㆍ은석초등학교 출강)의 플루트 그리고 천진불 음악 신동 김형주(11ㆍ신림초 5)의 콘트라베이스가 선사하는 작은 음악회의 막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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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게 키웠다는 소리 들을 때 진정한 삶의 의미 느낍니다”
기원 스님이 음악을 하겠다고 다짐한 때가 고등학교 시절이다. 대학 입시에 매진해도 부족한 때였지만 “플릇을 하겠다고? 그것도 절집에서 서양 음악이라니!” 주지스님은 쉽게 용납하기 어려웠다. 일반 가정에서조차도 사치로 인식돼온 것이 예술인데다 서양음악의 클래식이란 장르가 기독교를 찬양하는 내용 일색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넉넉하지 않은 절집에 시주 받은 돈으로 악기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주위의 염려와 따가운 눈총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고등학교 합창단에서 지휘자로 있으면서 취미로 시작한 것에서 욕심이 났어요.” 기원 스님과 플루트의 인연은 음악 선생님을 통해 점화됐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피아노학원에서 플루트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무척 부러웠죠.” 방과 후 수업으로 지도받기 시작하면서 주지스님을 조르고 졸라 기어이 가장 저렴한 20만 원짜리 플루트를 선물 받았다. “악기 자체가 여성스럽고 부는 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악기를 다룰수록 신이 났고 플루트를 전공하겠다고 다짐하면서 한 달에 5만 원하는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1주일에 한번 있는 수업을 싸구려 악기로 연습하다 보니 고장 나기가 다반사였다. 3류 대학이라도 좋으니 플루트로 대학에 가겠노라 다짐했고 성대에 염증이 생겨 수술을 하고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시절을 회상하는 내내 두 스님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치열한 노력 끝에 경원대 음대에 당당히 합격한 스님은 졸업 연주회를 훌륭히 마치고 성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기원이란 법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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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음악하지마라. 승부는 실력이다”
어린 형주를 업어 키운 이가 기원 스님이다. 스님은 한 시도 플루트를 손에서 땐 적 없었고 형주에겐 그 연주가 자장가였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며 자란 형주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저음 악기 콘트라베이스를 만지며 “이 악기가 마음에 들어 너무 배우고 싶다”며 울고 때를 쓰기 시작했다. 악기가 크고 현이 굵어서 어린 아이가 과연 다룰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새살이 수백 번 돋도록 열정은 식지 않았다.
처음부터 어른용으로 시작했지만 초등부 콘트라베이스콩쿠르에서 수상을 놓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선에서 만점을 받고도 본선에서 대상을 놓친 날 밥을 먹으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리던 형주는 그 후 단 한 번도 1등을 내준 적이 없다. 한국음악협회전국콩쿠르에서 수상 소감을 부탁하자 형주는 말했다. “부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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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마스터클래스에서 형주를 교육했던 마이클 울프 교수(독일 베를린 음대)는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어린 음악가다. 앞으로 크게 성장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현재 형주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영재양성 예비학교 학생으로 선발돼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고 있다.
형주도 또래 아이들과 같은 고민을 한다. ‘음악이 좋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된 일상이 힘들다.’ 내성적인 성격인 11살 형주가 어느 날 일기장에 담은 독백이다. 형주는 오늘도 자만심을 다스리는 108배를 올리며 굳은 의지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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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참선만이 수행의 전부가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키웠노라고 자부합니다. 내 분신과 같이 돌봤어요.” 주지스님이 기원 스님께 그랬듯 형주를 향한 애정은 진심 아닌 적이 없었다. 억지로 교육시킨 바 없이 전적으로 스스로의 선택에 맡겼다.
조계종립 은석초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유일한 스님으로 재직하면서 어렵게 배운 플루트를 인재양성에 회향하는 보람을 느낀다. 또한 대학원에서 작곡학을 전공중인 현재 “다양한 장르의 찬불가를 작곡하고 싶다”는 소중한 포부를 밝힌다.
주지스님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두 음악가들이 미래의 부처이며 더 넓은 세상에서 더 큰 음악을 공부하는 기회가 마련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은 절, 넉넉하지 않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올곧게 성장하는 두 음악 영재의 앞날에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하길 기원해 마지않는다. (02)888-5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