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능선은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얻은 깊은 하늘 속에 담겨 있고, 아쉬운 듯 녹엽을 놓지 않는 전나무 숲에는 문수동자의 도량 상원사가 숨 쉬고 있다.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한 도량의 단풍나무에서 가을은 시작되고, 어느새 목우당(牧牛堂) 사립문을 드나드는 찬바람은 하루하루 계절을 좁히고 있다.
찬바람 지나간 자리엔 보랏빛 구절초가 돋아나고, 백련당(白蓮堂) 죽담장 앞에는 스님과 동자 스님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제일인지 오늘일인지, 스님은 하늘 한 번 보고 웃음 한 번 웃고, 동자 스님은 머리 한 번 만지고 웃음 한 번 웃는다.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가는 오솔길을 스님들이 소리 없이 걷고, 수각(水閣)에 날아든 참새는 꽁지만 흔들다 문수전(文殊殿)으로 날아간다.
문수전에는 그 옛날 임금의 병을 고친 문수동자가 천진한 얼굴로 앉아있다. 그 옛날 임금이 아팠듯 중생 모두는 많이 아픈 것일까. 오늘도 문수전엔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돌계단 옆 고양이 석상 위로 참새들이 날아와 앉고, 길어진 고양이 그림자가 동자 스님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