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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례불교는 둔세승의 보살행 결과”
동국대서 한일 공동 국제학술연구 발표회 열려
9월 5일 동국대 다향관에서 열린 국제학술연구발표회에서 동국대 김호성 교수(왼쪽)과 일본 야마가카 대학 마쓰오 겐지 교수

2008년 4월 하남시 제2화장장 설립 계획 무산되면서, 종교계의 장례문화 주도와 역할이 부각되는 요즘이다. 한국 불교계 일각에서는 경제논리를 포교로 위장해 일본 장례불교를 벤치마킹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일본 생사의례(供養) 문화비교 연구회가 동국대에서 국제학술연구발표회를 개최해 눈길을 끈다.

한일 불교학 연구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9월 5일 동국대 다향관에서 열린 연구발표회에는 김호성 교수(동국대), 마쓰오 겐지 교수(日, 야마가카 대학), 이성운(동국대 박사과정 수료)씨가 발표했다.

# 일본 장례불교 성립의 배경
마쓰오 겐지 교수는 ‘일본 중세에 있어 죽음과 불교’를 주제로 발표했다.

마쓰오 교수는 “일본 사람들이 승려를 만날 기회는 장례식과 기일(忌日) 법회 등에 한정되며, 승려는 경내 묘지 관리자로 인식된다”며, 장례불교라는 말에는 불교인의 그러한 현상에 대한 비판ㆍ야유가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장례불교가 발전한 배경에 대해 마쓰오 겐지 교수는 “죽음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둔세승들로 인해 일본에 불교적 생사관이 널리 유행했다”고 진단했다.

관승(官僧)은 천황의 허가를 얻어 득도한 승려로 동대사ㆍ관세음사ㆍ연력사 등 세 계단(戒壇)에서 수계한 자를 말한다. 반면에 둔세승(遁世僧)은 천황과 무관한 입문의례 시스템을 갖은 관승 외의 승려를 일컫는다.

마츠오 겐지 교수는 “관승과 둔승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장례 종사 여부였다”며, “일본에서 승려가 장례의식을 담당하게 된 것은 2차대전 이후”라 소개했다.

둔세승들이 장례를 담당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마츠오 교수는 사예(死穢)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사예는 사체를 만지거나 장례, 개장 등을 해서 생기는 더러움을 말한다. 장례 등에 종사한 사람은 사예를 이유로 30일간 법회 등에 참여를 삼가야했다.

마츠오 겐지 교수는 사예의 예로 “임종이 임박한 승려나 혈연이 없는 이들을 절 밖으로 데리고 나가거나 길가나 강가에 버리기도 했다”며, “관인(官人)이나 관승에게는 사예가 중요한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반면에 둔세승들은 장례 등 죽음의 더러움에서 자유로웠다. 마츠오 교수는 “사예의 제약이 없던 둔세승들이 자연스레 장례에 관여했고, 자연스럽게 둔세승 사찰에는 묘지가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마츠오 교수는 “1220년대 사체 유기가 크게 감소했다”며, “유기된 사체까지도 장례한 둔세승 교단 성립과 경내 묘지 조성이 줄이었기 때문”이라 진단했다.

마츠오 겐지 교수는 “사예를 꺼리지 않은 선승ㆍ율승ㆍ염불승ㆍ일련종 문하승 들이 장례 등에 조직적으로 참여해 오늘날 장례불교를 이뤘다”고 말했다.

# 불교와 유교의 효 개념 비교
김호성 교수는 주제발표 ‘불교화된 효 담론의 해체’에서 유교에서 주장하는 “불교에는 효가 없다”는 주장에 반박하며, 불교와 힌두교, 유교의 효개념을 비교했다.

김 교수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도리로서의 효에 대한 가르침을 ‘가족윤리로서의 효’라 규정했다.

“중국 유교의 효는 가족윤리로서 효에서 출발했지만 가족윤리라는 한계에 머물지 않았다.” 김호성 교수는 “중국유교의 효는 충(忠)으로 연장됐고, 천하를 질서 짓는 지배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중심주의의 별애설과 연결됐다”고 정리했다.

김호성 교수는 인도불교의 효 개념을 명확히 하고자 인도힌두교의 효를 <마하바라타>를 통해 정리했다. 김 교수는 “인도힌두교도 효를 강조했다”며, 스스로 독신의 맹세를 세우고 지킴으로써 아버지의 재혼을 성사시킨 비쉬마의 불혼(不婚) 이야기, 판두 아들들이 취한 일처오부(一妻五父) 관계서 드러난 어머니에 대한 순명(順命) 이야기를 소개했다.

다만 인도힌두교에서는 효보다 카스트질서가 중시됐다. 김호성 교수는 “<바가바드기타>에 나온 아르쥬나의 회의와 크리쉬나의 응답에 따르면 계급의 의무가 가족의 법도 보다 우위였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인도불교의 효는 인도힌두교와 다르고 중국유교와는 더 크게 다르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중국유교의 효는 ‘효보다 더 큰 것은 없다(莫大於孝)’는 위상을 갖지만 인도불교의 효는 아니다. 인도불교에서 효는 동체대비 의미로 가족중심주의를 떠나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도힌두교와 중국유교의 효는 가부장제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불교의 효는 가부장제 속에서 논의되는 개념이 아니다. 불교는 가부장제 등 지배이데올로기가 아닌 인간 해방을 지향하는 전통”이라 설명했다.

한편 이성운 사장(정우서적)은 ‘한국불교의 시식의 인식과 변형 고찰’을 통해 한국불교의 시식의를 개괄했다. 이 사장은 “가변적인 의식이 최대한 경전과 사리에 계합해야 한다”며, “한문 중심의 시식문을 한글로 번역하자”고 제안했다.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8-09-10 오후 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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