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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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하나의 교단, 경전은 없었다”
불교의 역사적 이해2

강사: 조성택(고려대학교 철학과ㆍ불교철학)
주최: 한국학술진흥재단
일시: 2008년 7월 26일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강당
후원: 교육과학기술부

우리의 인생은 길과 같습니다. 인생과 길은 돌아본 위치에 따라 달리 보입니다. 역사도 되새기는 시점에 따라 달리 보이죠. 이를 우리는 역사의 재구성이라고 부릅니다.
한국 전통 퍼즐인 칠교놀이는 한 조각이 하나의 구성요소가 되는 서양퍼즐과 다르게 한 조각이 다양한 모양의 구성요소가 됩니다. 역사 또한 칠교놀이 조각처럼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인도불교사를 해체해 다른 시점에서 재구성해보겠습니다.

# 인도불교에서 시간과 역사의 부재
불교경전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은’(evam me suttam ekasmin samaye 如是我聞 一時 佛在)이라는 정형구로 시작됩니다. 보통 역사기록은 육하원칙에 의해 기술되지만 불교경전의 정형구에는 ‘언제(when)’가 불특정한 ‘한때’(ekasmin samaye 一時)라는 말로 표현돼 있습니다. 이점은 다른 고대 문화권 특히 한자문화권의 사건 서술과 크게 대비됩니다.

이는 불교의 시간관념을 보여줍니다. 윤회에서는 시간이 돌고 돌아 사건이 언제 일어났음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일시라는 것은 역사적 사건을 벗어나, 윤회 속 인연으로 만난 찰나의 우주적 사건입니다.

불교의 초시간적 관념때문에 붓다의 역사적 일대를 추정하는 것은 한계를 지닙니다.

붓다의 활동시기에 관한 정보는 아쇼카왕의 즉위연대에 근거합니다. 당시 마우리야 왕조는 그리스 등 주변국가와 국제교류가 빈번해 연대추정에 상당한 신빙성을 제공합니다. 역사학자들은 아쇼카왕의 즉위연대를 기원전 268~267년으로 설정합니다.

이 연대를 기준으로 붓다의 활동시기를 정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역사적 자료가 있습니다. 불교학계에서는 이를 각각 ‘긴연대’와 ‘짧은연대’라 부릅니다. ‘긴연대’는 상좌부ㆍ남방 전승 기록으로, 불멸 후 218년에 아쇼카왕이 즉위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붓다의 80세 열반은 정확한 기록으로 받아들여져 붓다의 생몰연대는 기원전 566~486년이 됩니다. 한편 산스크리트 문헌, 한역경전 및 티베트자료에 근거해 북방에 전승된 ‘짧은 연대’는 불멸 후 100년에 아쇼카왕이 즉위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짧은연대’에 따르면 붓다의 생몰연대는 기원전 448~368년입니다. ‘긴연대’와 ‘짧은연대’는 118년 차이가 있고 학자들 간에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 근대불교학 검토를 통한 새로운 출발
역사와 시간의 공백 상황, 즉 불멸후 경전으로 기록되지 않고 구전된 시기를 메우고자 근대불교학은 출발했습니다. ‘신화’를 역사로 복구해야하는 상황에서 시급한 것은 방대한 불교문헌에 대한 종합적 이해와 빨리어 경전, 산스크리트 사본, 그리고 한문 및 티베트 대장경 등 다양한 문헌의 언어학적 관련성을 밝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럽문헌학은 언어학적 관련성을 밝히는데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됐습니다. 문헌학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700년 이상 인도에서 ‘사라졌던’ 혹은 힌두교에 ‘흡수됐던’ 고대 인도불교의 역사를 재구성 할 수 있었습니다. 근대불교학이 재구성한 불교사의 기본 골격은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1. 불교는 하나의 교단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과정 속에서 여러 교단으로 분열됐다.
2. 현존하는 초기경전의 내용차이는 본래 동일성을 바탕으로 했다.

근대불교학의 이런 전제는 잘못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두 가지는 근대불교학이 도달한 결론이나, 기독교 세계관이 반영된 유럽문헌학 기초의 출발에서 이미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었던 것 으로도 보입니다.

근대불교학은 브라흐마니즘(Brahmanism)의 구전전통이 초기불교 경우에도 그대로 ‘재현’됐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브라흐마니즘의 구전전통을 가능하게 한 몇 가지 선결조건들이 초기불교에 없다는 점과 불교교리상 브라흐마니즘 구전전통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에서 근대불교학의 근거는 흔들립니다.

‘구전 전통’의 선결조건을 살펴보면 베다문헌이나 다른 브라흐만 전통의 텍스트가 전승되기 위해서는 ‘언어적 배타성’과 제도화된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초기불교 전통은 이 두가지 조건이 모두 결여됐습니다.

‘언어의 배타성’에서 브라흐만 구전은 텍스트 언어인 산스크리트 자체가 특정계급과 텍스트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돼 ‘구전’으로 비교적 변형 없이 전승 될 수 있었습니다.

불교는 붓다 자신이 특정 언어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해당 지역언어를 사용하여 법을 설할 것을 제자들에게 권했습니다. 붓다 자신도 산스크리트가 아닌 마가다어의 한 종류인 아르다 마가디(Ardha-Magadhi)를 사용했듯이 불교는 시초부터 다양한 지방의 속어들로 설해졌습니다. 현재까지 온전히 전승되어 온 스랑카 상좌부 경전의 팔리어도 고대인도 지방속어 중 하나였을 뿐 유일한 불교 ‘표준어’의 역할이나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다양한 지방속어가 사용된 측면에서 완전한 구전전승은 불교에서 가능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보다 상식적일 것입니다.

‘사회적 시스템’ 또한 브라흐만 전통에서는 카스트제도처럼 신성한 텍스트 전승을 위해 고안된 사회적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초기불교교단에서는 붓다 입멸 후 200~400년 후 전승자료가 있을 뿐 붓다 당시 일정한 시스템에 의한 전승 자료는 없습니다.

위 두가지 선결 조건 외에도 텍스트에 대한 관념이 브라흐마니즘과 불교 전통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브라흐만 전통에서 텍스트는 신성한 기원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텍스트 자체로도 신성했습니다. 하지만 초기불교 전통에서 브라흐마니즘적 의미의 텍스트에 대한 관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브라흐만 전통이 전제하고 있는 ‘음성’의 신성한 힘에 대해서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베다 문헌의 신성한 기원과 암송의 자부심을 비판하는 내용들은 초기불교 경전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자등명 법등명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 불교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 이 구절은 붓다 사후에 교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아난의 질문에 대한 붓다의 대답입니다. 일종의 유훈인 이것은 붓다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우며, 붓다의 사후 전개됐을 일련의 일을 이해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붓다는 입멸 시 이미 많은 제자들이 아라한 경지에 올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붓다는 후계자나 교단 운영에 관한 일체의 언급도 없이 다만 ‘자등명 법등명’이란 말로 아난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왜 붓다는 교단의 ‘미래’에 대해 일체 구체적 언급없이 ‘동문서답’ 했을까요?

저는 붓다가 아난의 질문에 ‘동문서답’ 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붓다는 상가(samgha, 僧伽)를 ‘조직’으로 생각하지 않고 수행공동체로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붓다는 자신이 ‘발견’한 법을 사후에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지만, 그것이 어떤 제도나 조직체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등명 법등명’은 붓다 사후 ‘법’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 불교적이고 당시 가장 정확한 현실적 충고였습니다. 아난에게 건넨 “열심히 정진하라”는 마지막 유훈 또한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됩니다.

법등명에서 ‘법’(dhamma)은 진리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붓다는 자신이 발견한 진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그 진리를 자신이 최초로 발견했다든지 혹은 자신만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교’(敎, sāsana) 혹은 교법이라해 ‘법’(dhamma)과 구별했습니다.

여러 제자들을 다양한 표현과 방법으로 가르쳤듯이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들도 자신들의 표현과 방법으로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길을 둘이 가지’ 못 하도록 했기 때문에 ‘법’에 대한 가르침(교법)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봐도 근대 불교학이 전제하는 하나의 교단 그리고 하나의 텍스트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저는 초기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성전(聖典)의 종교’가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실천하는 ‘체험의 종교’였습니다.

초기부터 다양성을 지녔던 불교는 브라만처럼 텍스트를 통해 진리를 전한 것이 아닌 수행과 실천을 통해 체험하는 종교입니다. 경전 속 저장기억으로서의 가르침이 아니라 삶속의 활력기억으로 가르침을 느낄 때 역사 속 붓다는 초역사적 법신불로써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노덕현 기자 | Dhavala@buddhapia.com
2008-08-12 오전 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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