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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여름날 들뜬 기운을 차분하게 하고 섬들은 가부좌를 틀고 깊은 선정에 들었다. 하늘과 바다는 도장을 찍은 듯 하나로 만나 안과 바깥이 한 결 같이 둥글어서 꿰맨 흔적 없는 마음인 듯 그대로 본래면목을 드러낸다.
한 생각 일어나면 바로 알아차려 돌이켜 화두를 든다. 그 자리에 바로 부처가 출현하는 까닭이다. 자성의 바다에 굽이치는 파도를 통해 한결같은 성품과 교감을 나눠온 일선 스님(금천선원 선원장)이 섬 속에 또 하나의 섬으로 살아가며 돌이킨 화두의 본래 자리를 글로 엮었다.
수행이란 참으로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송광사 수련법회에서 10년 넘게 좌선을 담당했고 소록도에서 배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닿는 섬 거금도 토굴에서 정진의 불씨를 다듬고 있다. 온몸으로 부딪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궁극의 길이다. 고뇌하는 몸부림이 힘겨워지는 순간 파도처럼 쉼 없이 들이대는 자성의 면모는 수행자에게 한 없이 투명한 거울이 된다. 허공과 같은 천연의 성품과 대면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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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한 바다에서 나침반이 있다는 안도감은 방황의 희망을 암시하듯 에세이 <소리>는 인생의 겸허한 나침반이 되고자 한다. “부처님께서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을 설하신 바도 인생이라는 끝없는 고행 속에서 나 스스로를 섬으로 삼아 스스로에게 귀의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처음 섬에 오는 배에 오를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외로운 마음은 천 길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뛰어내리고 나니 법성의 바다에서 빈 배와 같이 물결을 따라 자유롭게 오르내리게 됐습니다.”
스님은 “파도소리를 통해 본 성품을 깨닫는 순간부터 나는 섬이 된다”고 말한다. 형상의 바다를 보지 말고 마음의 바다를 보라한다. 파도소리를 도우(道友)삼아 세월의 바람에 밀밀한 하심을 띄운다. 헤아릴 수 없는 밤을 홀로 깨어 있던 바닷가 몽돌은 파도의 법문을 헤아린 바다의 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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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꿈꾸는 마음의 고향에서 장엄한 파도의 물결 따라 삼매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이 되라. 자성에 꽂히는 그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지는 성스러움의 고귀한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인생의 고해에서 표류하지 않고 위풍당당하게 살아가는 진리는 경계에 여여한 마음의 주인에게 그 열쇠가 있다고 전하는 파도의 읊조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