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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우리히어로즈 야구단’ 구단주 대행으로 취임한 차길진 법사. 구명시식으로 유명한 차길진 법사가 스포츠 구단 경영을 맡자 모두가 놀랐다. 종교인이 구단운영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와 기대 속에 차 법사는 스포츠와 문화를 접목한 마스터플랜을 세우는 등 우리 히어로즈 구단의 비전을 선보였다.
“저를 잘 모르는 분은 종교와 야구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삶에는 근엄한 부처님뿐만 아니라 화내는 부처님, 돈 버는 부처님도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는 삶, 종교와 야구는 떨어져 있지 않죠. 2002년 월드컵 때 스포츠로 전 국민이 한마음을 이룬 것처럼 끼가 넘치는 우리 민족에 맞는 신명나는 포교방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를 문화적 실천으로 회향하겠다 마음먹은 그는 오래 전부터 우리 히어로즈 주주로 후원 활동해왔고 구단내부사정으로 본격적인 대외활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차 법사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선수가 꿈이었다”고 말한다. 동대문야구장 근처에 살면서 선수 순번과 이름을 꿰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야구선수가 되지 못하고 초등학교부터 하던 검도로 국내외에 이름을 날렸다. 검도선수로 유명했던 그가 불교를 접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지리산 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이 저의 선친입니다. 선친은 한국전쟁 중 공비토벌을 위해 지리산 화엄사를 비롯한 일대 사찰을 불태우라는 상부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불교문화재를 수호한 독실한 불자였습니다. 제가 12세 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죽음’이라는 화두가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차 법사는 중학교 때부터 인천 용화사까지 찾아가 전강 스님에게 법문을 듣는 등 불교를 공부했다. 그러던 중 대학교시절 폐결핵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공주 마곡사에서 완치를 했다. 이후 그는 영능력으로 국내외를 넘나들며 불법으로 중생을 구제해 왔다.
그동안 그는 오성INC회장,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한국불교신문 사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 ‘눈물의 여왕’ 등 수편의 연극을 제작하고 최근 오페라 ‘Only Love’를 작업하고, 대학로에 300석 규모 극장을 완공하는 등 문화와 종교 전반에 걸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우리히어로즈 야구단 운영과 함께 대학로 명상센터를 마련해 대중적인 활용을 할 계획인 그는 ‘행복’을 화두로 삼은 수행자였다.
“먼저 자신이 행복을 느껴야 다른 이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히어로즈’라는 무대에서 직접 행복을 느끼고 가져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