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독도주민의 재 거주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부처를 상대로 어로작업에 필요한 쪽배 한척을 만들어 달라고 청원을 넣은 일이 있었다. 각 관계기관으로 이첩되어 돌아온 답은 ‘불가’였다. 결자해지하는 심정으로 국민모금을 하기로 했다. 그러기를 1년, 각계에서 답지한 의미 가득한 성금과 기계후원 등으로 1.3톤의 작지만 큰 배 ‘국민의 배 독도호’가 만들어졌고 주민에게 기증되었다. 2005년 3월 시마네 현은 억지주장의 본색을 드러내며 의회에서 매년 2월 22일을 독도의 날(그들이 부르는 이름은 예를 들기에도 진저리가 쳐진다)로 제정하기에 이르렀고 그날 포항부근 양포항에서 ‘독도호’ 진수식을 가졌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2006년 2월부터 원래 주민이던 부부가 독도에 재정착해 그나마 유인도로서 첫 걸음을 떼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7월 독도의 현주소를 돌아보면 달라진 내 외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저들은 시도 때도 없이 억지주장의 망언과 역사왜곡의 버르장머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생각해 보건데 일본의 얕은 수가 읽히기는 한다.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 인정받기 위한 정치꾼들의 속셈 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린다.
그러면 우리 정부는 독도라는 엄연한 고유영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슈가 되어야만 강력한 대처라는 등의 말매만 난무하고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거나 하면 흐지부지 넘어가 버려 일관성 있게 실행된 정책이 독도관련해서 이뤄진 적이 거의 없다고 본다. 처음부터 따끔하게 지속적으로 이의제기를 하고 눈빛하나 넘보면 그 때마다 철옹성을 쌓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더라면, 섣불리 자신들의 정치적 인기몰이를 위해 남의 땅을 집적거려보는 따위의 오만방자함이 오늘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적기일 것이다.
크고 폼 나는 것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작고 사소한 듯해도 주민이 재상주하면서 가져온 변화를 답안삼아 대다수의 국민들이 수긍하는 일이면 차근차근 길을 짚어가야 할 것이다.
하루 200명에서 400명이었다가 최대 1880명까지 독도에 일일 입도객을 늘렸지만 실상 애국심 가득한 심성으로 어렵사리 찾아가는 독도는 계절이나 기상여건에 따라 접안조차 할 수 없는 날이 많다. 현재 선착장 시설의 반대편에 선착장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섬의 좌 우안으로 해안산책로 등을 설치해서 정상까지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잠시 머물며 자국의 영토사랑에 진한 발자국을 남기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책무일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상주인구를 다가구화 하여 서류상의 행정구역 분류가 아닌 사람 사는 소박한 섬마을의 모습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등재된 주민부터 차례로 상황이 갖춰지기 이전이라도 주거의 자유와 거주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배려와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만일 일본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짚어보라. 보호구역이라 해도 관련된 여러 기관을 단일화해 어떤 일을 추진하더라도 걸림돌이 없도록 책임부서를 신설하거나 지목해야 한다. 현재 연구기관이 있지만 인원을 더 확충하고 지원해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은 역사발굴등과 관련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공무원 역시도 전담 부서가 있지만 임기를 채우고 옮겨 앉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독도관련해서 만큼은 지향해야 한다. 이는 사소한 듯하지만 사실상 필요한 일임을 10년 가까이 울릉독도를 드나들며 경험에 의해 깨달은 내용이다.
독도는 이름처럼 돌섬이 아니며 고독한 곳이어서도 절대 안 된다. 국민의 단합된 의지가 서려있고 민족성의 상징처럼 우뚝한 백두대간의 뿌리인 것이다. 영토는 지켜질 때 의미와 가치를 가지며 이는 민족적 사명이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눈치 볼 틈을 갖지도 주지도 말아야 한다. 끝으로 며칠 전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신문고에 제안서를 접수했는데 처리기관이 ‘외교통상부 동북아시아국 일본과’로 되어 있었다. 이 시점에 이것은 또 무슨 이야기인가? 아직 독도는 외롭다. 독도 주민도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