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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감, 조주 선사 茶緣으로 한 자리에
쌍봉사 철감ㆍ조주 선사 영정 봉안식 열려
7월 12일 화순 쌍봉사에 봉안된 철감 선사 영정
‘차 마시는 것과 선 수행이 한 맛(茶禪一味)’이라는 말은 선종 차문화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예다. 중국 조주 스님이 ‘끽다거(喫茶去)’라 말해 선다(禪茶)의 효시라면, 한국에는 철감 선사가 있었다. 조주 선사와 철감 선사는 스승 남전 선사 밑에서 11년간 법연을 맺은 사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7월 12일 화순 쌍봉사(주지 영재)에 선종 차문화의 주역 조주 선사와 철감 선사의 영정이 봉안돼 ‘끽다거’의 법연을 이었다.

‘쌍봉사 호성전 철감ㆍ조주 선사 진영 점안식’에는 영조 스님(송광사 주지)을 비롯한 사부대중 200여명이 참석했다. 쌍봉사는 이번 영정 봉안을 위해 중국을 2번 오가며 조주 선사 목판상을 모태로 영정을 제작했다.

소설가 정찬주씨는 두 스님의 영정 봉안 연유문에서 “철감 선사 도윤은 18세(815년)에 김제에서 출가해 10년 동안 화엄학을 배우던 중 ‘깨달음의 통발과 그물이 어찌 심인(心印)의 묘한 이치만 하겠는가’라고 크게 발심했다. 철감 선사 28세에 사신의 배를 얻어 당나라로 들어갔다. 철감 선사는 바로 남전 선사의 제자가 돼 밤낮으로 심법(心法)의 묘리를 익혔다. 마침내 남전 선사는 ‘우리 종의 법인이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하고 선사를 인가했다고 한다. 선사는 남전 선사 열반 후 13년간 당나라 여러 선사 문하에서 정진 후 문성왕 9년(847) 50세에 귀국했다”고 말했다.

화순 쌍봉사에 철감 선사 영정과 함께 봉안된 조주 선사 영정
조주 선사에 대해 정씨는 “조주 선사는 778년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출가해 남전 선사를 찾아 제자가 된 후 40년을 시봉했다. 남전 선사에게 도를 묻다가 “평상의 마음이 도”라는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선사는 120세 열반에 들기까지 ‘무(無)’,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라는 많은 화두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영재 스님은 인사말에서 “철감 선사와 조주 스님의 다연을 현대에 맞춰 많은 대중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철감조주 선사 진영식은 역사적 전거를 밝히고 중국 고증자료를 확인하고, 고승에게 인가 받는 등 정찬주씨의 숨은 공로로 가능했다.
양행선 광주전남지사장 |
2008-07-17 오후 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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