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현재 대한민국 행복지수는 71.1점이다.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가 올해 초 전국 성인 남녀 1만23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귀하는 현재 얼마나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문조사를 엮어 6월 29일 발간한 <대한민국 행복지수>에 수록된 결과다.
남녀별, 소득별, 종교별, 연령별, 가족형태별로 다양하게 나온 결과 가운데 종교인의 행복지수를 보며 충격을 이길 수 없었다.
종교별 행복지수는 개신교인이 72.9점으로 가장 높았고, 가톨릭이 71.5점, 불교 69.5점 순이었다. 불교가 최하위였던 것이다. 불교는 심지어 무종교(70.6점)보다도 낮은 행복지수를 나타냈다.
부처님께서는 행복한 해탈의 경지를 설하셨는데 왜 지금 이 순간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불자들은 ‘덜’ 행복한 것일까?
한 스님은 ‘복 짓는 것’에서 행복의 차이가 온다고 말한다. 복을 달라고 부처님께 비는 ‘기복(祈福)’에 물들어 있는 불자들이 복 짓는 것 즉 ‘작복(作福)’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복을 닦을 것인가. 부처님은 보시하라고 강조한다. 육바라밀에서 보시를 처음에 놓는 것도 모두 ‘복 짓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깨닫기 위해서도 ‘복 짓는 것’은 중요하다. 부처님께서도 ‘수복(修福)제일’임을 강조하셨다. 복을 닦는 것을 습관화해서 세세생생 복을 지어야 한다. 알면서도 ‘기복’이 앞서는 이유를 중생이기 때문이라고 둘러대도 괜찮을까?
부처님께서는 현생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잡아함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했다.
“네 가지의 길이 있느니라. 첫째 자신이 맡은 직업에 최선을 다해 스스로 생활을 이끌어야 한다. 둘째 갖가지 재앙으로부터 재산을 잘 보호해야 한다. 셋째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방탕하거나 음흉하지 않은 착한 친구와 사귀어야 한다. 넷째 균형 있는 생활을 꾸려나가야 한다. 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현세에서 편안하고 즐거우리라.”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불행과 행복은 자매라고 한다. 행복이 먼저 오면 불행이 뒤따르고, 불행이 먼저 오면 행복이 뒤따른다. 거대한 윤회의 수레바퀴가 한사람의 일생, 하루 일과, 한 생각 속에서도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절망하기보다 “복이 없음은 고통과 괴로움의 근원이니 복 짓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하셨던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