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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서지편’, 석가탑에서 어떻게 수습됐나?
정영호 단국대 박물관장(가운데)

석가탑에서 900여년을 침묵한 ‘묵서지편’은 어떻게 수습됐을까? 1966년 석가탑에서 ‘묵서지편’을 최초 수습한 정영호 관장(단국대 박물관)이 말하는 당시 상황을 정리했다.

1966년 9월 ‘경주 불국사 엉망진창’이라는 한국일보 기사를 보고 스승 황수영 박사 등과 경주 불국사를 찾았다.

석가탑은 1ㆍ2ㆍ3층 옥괴석 모두가 삐뚤어진 상태였다. 석가탑을 두고 당시 물리학자 등은 지진에 의한 것이라 주장했다. 불국사 스님들도 “지진으로 경상 위에 놓인 <경전>이 떨어질 정도였다”고 증언했으나 정 교수는 달랐다. 석가탑 옆 다보탑이 멀쩡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결국 석가탑 옥괴석이 삐뚤어진 원인이 밝혀졌다. 불국사 수위가 도굴을 위해 건축용 작기로 탑을 뒤졌던 것.

바로 해체작업이 시작됐고, 석가탑 2층에서 사리장엄물이 수습됐다. 주지실에서 주지 경암 스님, 황수영, 최순우 박사 등과 뚜껑을 열었더니 밑바닥에 파란 묵지가 있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좌장격인 김상기 교수가 “측천무후글자다. 더 이상 손대지 말라”고 지시했다.

석가탑 해체를 두고 김재원 관장(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 등이 마음대로 해체했다며 반발하기도 했으나, 문화재관리위원회에 보고하고 유물 모두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이관했다.

그 후 ‘묵서지편’은 1996년 한겨례신문에 손보기 박사가 묵서지편 존재를 세상에 알릴 때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다. 1997년 수장고에 보관된 보라색 라보자기에 싸여진 ‘묵서지편’ 해체가 시작됐다.

‘묵서지편’ 보존처리는 현재 진행중이다. 천주현 연구원(국립중앙박물관 보존처리팀)은 “석가탑 유물 보존처리 지시후 구성된 소위원회를 통해 2007년 8월부터 2008년 3월까지 1차 보존처리를 마쳤고, 2008년 3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묵서지편’ 보존처리를 마칠 예정”이라 말했다.

당시 석굴암 해체는 정식발굴이 아닌 긴급 수습으로 공식 사진자료는 없다. 정 관장이 촬영한 것이 전부다. 정영호 관장은 기록보존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던 촬영필름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제공했다. 이 사진들은 불국사 성보박물관에도 제공돼 당시 ‘묵서지편’ 수습의 생생한 현장을 전할 예정이다.

정영호 관장은 “김상기 교수 지시를 따라 비단뭉치를 그대로 둔 것이 다행이었다. 그때 섣불리 해체했다면 오늘날 ‘묵서지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8-07-01 오전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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