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포동 경기여고(교장 주영기)에서 불교문화재 3점이 훼손돼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5월 말, 학교 공원화 사업 중 주 교장이 지시해 교내 중앙정원 등에 위치했던 5층 석탑과 석등, 교계 첫 의료병원인 ‘불교제중원(佛敎濟衆院)’ 표지석을 땅에 묻은 것.
전문가의 문화재 검증도 없이 매장된 사실에 교사들이 반발하면서 6월 4일, 석탑 등은 다시 꺼내졌지만 석탑과 석등은 해체된 채 학교 방송실 창고로, ‘불교제중원(佛敎濟衆院)’ 표지석은 화단에 방치됐다. 이 과정에서 석등 다리 하나는 부러져 훼손되기까지 했다.
이 유물들은 경운궁(덕수궁) 근처 절터가 학교에 편입되면서, 1988년 학교 이전과 함께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고정주(건축문화재과)씨는 “시대 및 학술적 가치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매장한 것은 비상식적이지만 문화재청은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강제성이 없다”고 말했다.
한 불자는 “(문화재를) 땅에 묻은 행위를 무지와 행정편의 탓으로 돌려도, 석등 다리를 부러뜨리고 창고와 화단에 방치한 것은 명백한 훼불행위”라 지적했다. 이에 대해 “상급기관에 의뢰해서라도 학교 기물 손괴 및 관리부실 책임을 주영기 교장에게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여고 관계자는 “1988년 학교 이전 때 학교 중앙에 놓인 후 지금까지 교내 구성원간 갈등이 이어졌다. 이를 해결하려는 방법이 잘못된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청강연을 위해 경기여고를 찾았던 유홍준 前 문화재청장이 석등 등이 문화재 가치는 낮은 물건이라 말한 것도 땅에 파묻게 된 계기였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일본강점기 당시 해인사 주지를 지낸 이혜광 스님 절 유물로 일본식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여고에서는 ▲복원 후 원래 위치에 놓거나 ▲교내 다른 장소로 이전하는 방법 ▲불교계에 위탁하는 방법 등 다양한 처리방법을 의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용역업체에 의해 ‘불교제중원’ 표지석만 오고 기단석은 정동에 남아있는 등 학교 의지와는 관계없이 교정에 있던 물건들”이라는 경기여고 관계자의 말은 근대 불교문화재에 대한 대책이 시급함을 일깨운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수록 개신교 교장의 훼불행위를 탓하기에 앞서 불교문화재를 방치한 교계의 자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