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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긍정과 부정의 경계는 절제”
밝은 사람들, 제 5회 학술연찬회 개최
‘욕망(欲望/慾望): [명사]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사전적 의미의 욕망은 삼독 중 탐심(貪心)의 뉘앙스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무엇에 부족을 느끼는가에 따라 욕망은 괴로움의 단초가 아닌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욕망에 대한 고통과 원동력의 경계는 무엇일까?

6월 1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에서 밝은사람들(소장 박찬욱)이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제5회 학술연찬회가 그 해답을 제시했다.

초기불교: 정준영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유식불교: 한자경 교수(이화여대), 선불교: 이덕진 교수(창원전문대), 서양철학: 박찬국 교수(서울대), 심리학: 권석만 교수(서울대), 생물학: 우희종 교수(서울대)가 각 분야별 ‘욕망’을 소개했다. 이들이 선보인 ‘욕망’을 ▲욕망의 기원 ▲욕망의 기준 ▲욕망의 조절방법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 초기불교
정준영 교수는 욕망의 기원에 대해 “욕망하는 대상이 있는 것 같다. 자기보존의 욕망 즉 생리적 욕망과 취착하는 자아관념은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불교에서 욕망의 기준은 “탐욕과 갈애 등을 증장시키느냐, 줄이느냐가 기준이 된다”고 소개했다. 정 교수는 <대념처경> <숫타니파타> 등을 인용해 사성제, 팔정도 등 부처님 가르침이 욕망의 조절법이라고 설명했다.

# 유식불교
한자경 교수는 욕망의 기원을 “탐진의 욕망은 말나식의 욕망으로 의식표층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말했다. “반면에 아뢰야식에서 일어나는 욕망은 바람직한 원망”이라는 한 교수는 이것을 ‘원(願)’으로 표현했다. 욕망의 기준은 12연기의 환멸문인가 유전문인가를 중심으로 설명했고 그 경계를 무명과 지혜로 표현했다. 한자경 교수는 “탐진에 의한 욕망은 아집과 아상에 의한 것으로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무명의 극복이 필요하다”며, “동체대비를 깨닫는 것이 욕망 아닌 자비를 얻는 방법”이라 말했다.

# 선불교
이덕진 교수는 “선에서는 욕망이란 단어 자체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선은 문제를 문제삼지 않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며, “주인공의 삶을 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욕망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욕망 속에서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마음공부를 권했다.

# 서양철학
박찬국 교수(서양철학)는 니체의 견해를 인용해 “인간의 가장 근본적 욕망은 자기를 고양시키려는 욕망이다. 인간은 단순히 자기보존에 그칠 수 없는 존재”라 규정했다. 박 교수는 “긍정적 욕망은 이성적 욕망이며, 부정적 욕망은 비이성적 욕망”이라며 에리히 프롬의 견해를 빌어 설명했다. 욕망의 조절방법으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욕망제어를 위해 학문을 강조했다”면서 실천적 지혜로서 중용을 강조했다.

# 심리학
권석만 교수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환경과 상호작용한 것을 욕망의 기원으로 설명했다.그는 “생명 유지를 위한 욕구(결핍욕구)가 다양하게 진화된 것이 성장욕구”라며, “모든 생명은 살기위해 욕망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욕망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훈련과 자기조절 등의 방법으로 욕망 조절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 생물학
우희종 교수는 “욕망은 생리학적인 것에 바탕하지만 그 자체에서 항상 재생산된다”고 전제했다. “욕망도 관계성 속에 변화한다”는 것이 우 교수의 견해다. 우희종 교수는 “관계에 깨어있거나 열려있거나 머무르지 않는 것이 욕망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물학적으로는 욕망은 약이면 조절 가능하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우희종 교수는 “욕망의 조절을 위해서는 통찰이 필요하다”며, “욕망 조절보다는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밝은사람들의 이번 학술연찬회는 자료집 先출간 등 무수한 화제를 뿌리며 공연장 좌석을 꽉 채운채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좌장 김종욱 교수(동국대)는 “하반기에는 자아를 중심으로 학술연찬회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밝은사람들의 계속된 실험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다.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8-06-20 오후 8: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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