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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살살 하이소.”
“다들 재밌게 하자구요.”
“화이팅!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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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친목하고 즐기자고 하는 경기니까 경기는 재미있게 ‘살~살~ 하자’고 했다. 말은 그랬지만,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서브하는 것만 봐도 장난이 아니다. 언제 저런 실력을 쌓았지? 평소에 근무 안하고 배구만 했나? 관중석의 응원도 결코 즐기자는 분위기가 아니다. 몸을 아끼지 않는 리시브, 국가대표를 방불케 하는 스파이크, 짝퉁 스카이 서브가 속출하며 경기는 뜨거워졌다. 물론 다 그렇게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등으로 받기도 하고, 금 밖으로 나가는 공을 애써 따라가서 건드려 점수를 잃고 욕을 얻어먹기도 하고, 분명히 앞으로 친 공이 옆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작은 운동장은 웃음의 도가니가 된다. 가야산 홍류계곡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배구로 한마음이 되는 경쾌한 웃음의 바다를 해인사가 이루어 가는 현장이다.
배구로 하나 되는 치인리 10번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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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도 하루 쉬는 6월 19일 가야산 해인초등학교 운동장이 하루 종일 시끌벅적했다. 8년만에 ‘해인사주지배 배구대회’가 열린 것이다. 해인사 스님팀, 종무소팀, 청년회팀, 가야면 사무소, 가야농협, 해인초등학교(교사 직원), 국립공원관리공단, 의용소방대 등 8팀이 출전한 배구대회는 해인사를 중심으로 지역민들이 화합과 단결을 다지는 축제 마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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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이 직접 사인을 한 배구공으로 시구를 하면서 시작된 배구대회는 두 개의 코트에서 참가팀 전체가 골고루 경기를 벌이는 풀리그방식으로 진행됐다. 9인조 배구에 선수가 모자라면 옆 팀에서 대여(?)도 가능하고 발을 사용하는 것까지 허용되는데다가 경기가 안 풀려 열 받으면 아무나 작전타임을 요구해도 되는, 그야말로 단합용 배구대회였다. 응원석도 마찬가지. 징과 북, 꽹과리는 필수품이고 미처 준비를 못한 팀은 숟가락으로 양은쟁반을 두드리기도 하고 냄비 뚜껑과 페트병도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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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응원을 하면서 입장이 아주 난처한 사람도 많았다. 남편은 소방대 소속이고 동생은 해인청년회팀에 출전한 보살은 양쪽코트를 누비며 응원했다. 오전엔 아이와 함께 선생님들을 응원하던 ‘엄마’가 오후 준결승(해인초교 VS 관리공단)에서는 선생님팀을 외면하고 관리공단팀을 응원하는 ‘아내’로 변신하기도 했다. 해인초등학교 6학년인 동재는 면사무소 직원인 아버지가 선생님들과 경기를 할 때 누굴 응원해야 할지 몰라 친구들과 제기를 차고 놀았다. 해인사의 마스코트 동자승 문수(2학년 길상암 거주)도 북을 치며 응원을 하다가 해인사 스님들과 선생님들이 경기를 할 땐 ‘이기는 편 우리 편’하는 심정으로 양쪽을 다 응원했다. 알고 보면,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치인리 10번지’에 사는 사람들이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번지는 해인사와 상가지역 해인초등학교까지를 아우르는 하나의 지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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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하는 선수나 응원하는 직원이나 가족들은 배구공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땀 흘리고 소리치며 더위도 잊었다. 그런 가운데 단연 주목을 받은 팀은 해인사 스님팀. 해인사 강원의 축구실력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이날 출전한 배구팀은 종무소의 국장스님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이틀 전까지 비를 맞으며 강훈련(?)을 받았고 훈련 중 부상을 입은 스님까지 발생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서서히 실력이 들통 나기 시작했다. 경기 뒤에 한 스님이 “스님팀은 떨어지고 청년회나 종무소팀이 (결승까지)올라가는 게 해인사의 작전이라니까요”라고 설명했지만 믿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승자’ 내년엔 더 멋진 만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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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 만발한 가운데 예선전이 끝나고 준결승을 거쳐 결승에 오른 팀은 해인청년회와 해인초교팀. 해인사 총무국장 심우 스님의 심판으로 진행된 결승전은 매주 수요일마다 배구 연습을 한다는 해인초교의 조직력을 앞세운 노련미와 해인청년회의 패기가 맞붙은 대접전이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스코어를 기록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어진 결승전은 결국 해인초교의 승리로 끝났다.
이날 참가한 8개 팀이 모은 참가비 80만원은 해인초등학교에 장학금으로 전달됐다. 이날 배구대회에 참가한 각 팀이 받은 상금은 ‘미얀마 돕기 성금’으로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에게 전달됐다. 수행은 내려놓고, 업무는 미뤄두고, 가게는 문 닫고 배구공 하나로 만난 치인리 10번지 사람들, 8년만의 재회를 기쁘게 마무리하고 내년엔 더 멋진 만남을 기약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