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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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봉정암 10보 1배 동행기’

6월 10일 대한불교조계종 부산 백양산 불광사(주지 보광)의 제11차 봉정암 10보1배 참회기도에 42명의 신도들이 참가했다. 순례단은 아침 7시 부산을 출발해 오후 1시경 설악산 백담사 입구에 도착했다. 이들은 첫날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 약 5km에 이르는 산길을 오른 뒤, 오세암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1박을 했다. 이튿날 오세암에서 봉정암까지 약 4km를 10보1배로 참회의 길을 나섰다. 72시간 동안 14km의 산행과 4km의 10보1배는 한 걸음 한 걸음 참회의 꽃을 피웠다.

걸음걸음 참회의 꽃


참회가피도량 불광사 주지 보광 스님은 10악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양설, 악구, 탐, 진, 치’를 참회하기 위해 2005년부터 10회에 걸쳐 10보1배 참회기도를 봉해왔다. 이번 순례단 출정에 앞서 스님은 “봉정암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부처님 진신 뇌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불자라면 평생 꼭 한번은 가고 싶은 도량이지만 워낙 멀고 험한 산길이라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부처님 명호를 일념으로 부르며 올라가기에 10보 1배는 좋은 방편이다”며 기꺼이 따라와준 신도들을 격려했다.

버스는 6시간을 달려 백담사에 도착했다. 백담사를 돌아본 후 오세암으로의 산행을 시작했다. 순례단은 걸음마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고, 모든 생명은 연결돼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며 인간과 자연의 상생, 화함, 평화를 염원했다. 이번에 처음 참가한 박묘순(44)씨는 “불자라면 꼭 한번 가봐야 할 성지라고 해 늘 가고 싶었다”며 웃었다. 또 8번째 봉정암 순례에 따라나선 김소순(63)씨 역시 “늘 걸어서 올라갔지만 이번에는 꼭 10보1배로 봉정암을 오르겠다”며 내일 있을 10보1배의 각오를 다졌다.

오세암으로 향하는 산길은 경사가 45도는 됨질할 만큼 가팔랐다. 처음 산길에 올랐을 때는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이들도 30여분이 지나자 말수가 줄어들었다. 자기와의 싸움, 고행이 시작됐다. 순례단은 영시암을 거쳐 4시간여를 걸어 오세암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며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인사를 나눴다. 무릎연골, 발목인대, 교통사고로 인한 허벅지 부상으로 다리가 아픈 박희숙(48)씨는 “수 차례 수술해 다리가 아프지만 봉정암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힘들었던 산행을 말했다. 또 최고령 참가자인 이덕연(66)씨도 “여기서 포기하면 끝이란 심정으로 마음 속으로 관세음 보살을 수없이 외며 걸었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모두들 내면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었다.

오세암에서 저녁공양을 마치고 김기범 법사는 순례단에게 “내일 있을 10보1배는 개인의 신심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위험한 곳에서 무리하게 하면 다치게 돼 남에게 피해를 줄 경우도 있으니 자기 능력에 맞춰 융통성 있게 10보1배를 해야할 것”이라며 모든 불자의 원만회향을 기원했다. 저녁 예불과 108다라니기도까지 모두 마친 뒤 몸을 뉘었다. 온종일 걸은 피로 때문에 눕자마자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이날 밤 기온은 영상 5도까지 내려갔다. 두꺼운 이불을 덮었지만 몹시 추웠다. 이번 순례에서 처음 만나 100년 지기처럼 가까워진 이들은 곁에서 서로에게 화덕이 되어주었다.

6월 10일 아침 6시. 고행의 아침이 밝았다. 오세암에서 준비해 준 따뜻한 미역국으로 언 속을 녹이고 몸을 푼 뒤 다시 길을 떠났다 지금부터 10보1배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등산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니 매일 하던 절이지만 조금 어색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1배, 1배를 거듭하면서 허벅지와 팔 근육이 묵직해짐을 느끼며 쑥스러운 감정은 사라졌다. 온몸으로 전달되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일념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되 뇌였다. 한걸음에 살생으로 지은 죄를, 또 한걸음에 투도로 지은 죄를, 세 번째 걸음에 사음으로 지은 죄를…. 내딛는 걸음에 10악을 지은 스스로를 참회하며 10보를 나아갔다. 그리고 1배하며 10가지 악업을 참회했다. 순례단이 산길을 지나는 동안 등산객들이 경외심과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담아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봉정암에 가까워질수록 이미 다리가 무거워 한걸음 떼기도 힘들 정도였고, 어깨에 맨 배낭조차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스님과 늘 함께 10보 1배를 떠나온 김기범 법사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에 온 힘을 쏟고 집중하다 보면 무념무상이 된다”며 “괴로움에도 단계가 있고 참회하는 것이 바로 인생살이에서 쉬어가는 코너인 것”이라며 일행을 격려했다.

10보1배는 자신을 낮춤으로써 탐(탐욕), 진(성냄), 치(어리석음)를 걷어내고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불교의 수련법이다. 절은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몸동작으로 가장 경건한 예법이다. 진정한 예법은 마음 속에 교만함이 없어야 하는데 절은 교만과 거만을 떨쳐내는 행동예법이다. 그래서 10보1배는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온 몸으로 참회하고 변화를 기대하는 수행정진이기 때문에 마음이 닫힌 사람들에게도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출발할 때 준비한 새 신발이 이틀 새 닳았다. 면장갑도 땅에 닿는 부분은 실밥이 풀리는 강행군으로 무릎과 손목이 상할까 염려됐다. 봉정암에 가까워질수록 순례단의 육체적 고통도 커져 갔다. 11시 10분경에 봉정암을 오르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8부 능선 깔딱고개에 이르렀다. 체력은 완전히 바닥나고 일어서면 어지러워 곧 쓰러질 것 같다. 한 순간 정신을 놓으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다. 험한 바위를 기어가며 10보1배 정진을 이어갔다. 이윽고 봉정암이 눈 앞에 나타났다. 관광객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목탁소리도 어렴풋이 들린다. 순간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눈물을 참으며 “감사합니다”란 짧은 말로 마지막 절을 하는데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어느 하나 낙오되지 않고 봉정암에 오른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10악을 참회하는 것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고 싶다는 일념으로 10보1배를 시작한 순례단은 9시간 만에 봉정암에 도착했다.

고행의 끝에서 살아있는 부처를 맞다


먼저 봉정암에 오른 관광객들이 “대단합니다” “성불하세요”라는 응원과 박수 갈채를 받으며 꿈에 그리던 사리탑에 올랐다. 불자라면 살아생전 꼭 한번은 올라야 한다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 이곳 봉정암 사리탑 앞에 서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는 마음은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차 하늘을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워졌다. 벅찬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해발 1224m, 9km의 험준한 설악산. 걸어서도 가기 힘든 그 길을 10보1배로 고행정진 했다는 성취감에 신심이 커졌다. 10년을 하루같이 108배 수행을 해온 권춘선(62)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감기몸살로 아픈 몸을 이끌고 10보1배를 마친 김수경(63)씨 역시 “스님께서 다음에 건강할 때 하라고 말리셨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봉정암 사리탑 앞에서 예를 올리고서야 산 아래를 바라봤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설악산은 안개로 둘러싸여 신비로운 영산의 모습이었다. 많은 참배객과 등산객으로 늘 붐비는 봉정암에는 맑은 공기와 부처님의 향기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하기에 좁은 법당에는 밤새 철야기도를 하는 불자들이 많았다. 순례단의 거의 대부분은 사리탑에 올라 철야기도를 하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6월 12일 마지막 날 새벽. 봉정암은 고요했다. 천 년을 넘게 서있는 설악산이 언제나처럼 조용히 아침을 부르고 있었다. 보광 스님과 신도들은 잠을 설쳤다. 2박3일간의 10보1배 대장정이 끝나는 날. 일찍 일어나 부처님께 인사를 드렸다. 아침 예불을 드린 뒤 보광 스님이 먼저 나서고 그 뒤를 신도들이 말없이 뒤따랐고 몇몇은 눈물을 훔쳤다.

백담사 주차장에 이틀을 기다려준 버스기사가 순례단을 반갑게 맞았다. 에어컨을 미리 틀어둬 사흘간 땀과 눈물 베인 온몸에 한기가 돌 정도였다. 어느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않았다. 빙그레 웃기만 할뿐. 떠나올 때 뵈었던 불광사 부처님처럼. 혹독한 자기와의 싸움. 편하고자 하는 본능과의 싸움. 포기하려는 의지와의 싸움, 42명의 순례단은 치열한 고행에서 마지막 승자가 됐다.
글=박지원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hdbp@hanmail.net
2008-06-20 오전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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