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묘(善妙)의 마음이 깃든 도량, 아득한 시절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마당을 텅 비운 채 초여름 안개비에 젖고 있다. 그 많던 소백산 봉우리도 오늘은 모두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무량수전만이 유일한 세상처럼 서있다. 시간의 자리도, 오고 감의 길목도 없을 것만 같은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쌓이는 안개비를 맞는다.
법당에선 스님과 불자들이 사시예불을 올리고 있다. 법당 뒤편에는 선묘의 바위 ‘부석(浮石)’이 보인다. 의상(義湘, 625~702) 스님을 연모했던 선묘 낭자는 용으로 변신하여 스님을 따라왔고, 스님의 불사(佛事)를 방해하는 산적들을 이 바위를 들어 올려 물리쳤다고 한다. 그 후 선묘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石龍)으로 변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고 전해온다.
안개 숲 어딘가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마당 모퉁이에는 파란 붓꽃이 빗방울을 이고 있다. 삼층석탑을 돌아 오솔길을 걷는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가까이 들려오고 숲과 숲을 잇는 오솔길에는 오래된 발자국들이 보인다.
예불을 마친 스님이 법당을 나선다. 이제 법당도 텅 비고 그 텅 빈 공간은 일체중생을 담는 무량수불의 품이다. 뻐꾸기가 운다. 아득한 시절 선묘는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이루지 못한 마음처럼 안타까운 것이 또 있을까. 시간도 물리고 길목도 닫은 부석사. 숲속 오솔길에는 의상 스님의 발자국이 빗방울에 드러나고 무량수전 뜰아래는 물안개가 선묘의 마음처럼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