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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갈 길이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 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시인 오현 스님(신흥사 회주)이 지난 해 상재한 시집 <아득한 성자>에 실린 위의 시 ‘아지랑이’로 제16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서울신문사(사장 노진환)와 공초 오상순선생 숭모회(회장 이근배)가 주관하는 공초문학상 시상식은 6월 12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실에서 열렸다. 시상식에서 오현 스님은 “말과 글을 버리는 공부를 하는 중이 시를 쓰고 상을 받는 일은 아무래도 우스운 일이다. 옛날에 절에서 중노릇 못하는 사람을 쫓아 낼 때는 몹시 망신을 주어 내쳤다는데, 나도 상을 받으려니 절에서 쫓겨날 것 같은 부끄러움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그러나 김남조 선생이 조금 전에 상을 주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기쁘게 받아야 한다고 말해 줘서 조금은 기쁘기도 하다”고 겸양했다.
오현 스님은 “내가 오래전에 공초 선생님을 조계사에서 모실 기회가 있었는데, 선생께서는 누구에게나 만나면 아주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그런데 나를 보면 늘 ‘중 옷을 입고 뭐가 그리 바쁘냐’며 일없는 가운데 귀한 참사람(無事眞人)이 되라고 권하곤 하셨다”고 회고했다.
공초문학상 심사 위원장 오세영 시인(서울대 명예교수)은 심사평을 통해 “오현 스님에게 이 상을 드려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며 “본 상의 정신적 지주라 할 공초 선생의 일생이 무소유를 실천하는 불가의 가르침에 스님의 그것과 너무나 일치하는 바 있어 스님의 수상을 배제하고서는 이 상의 존재 의미가 활성화 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오세영 시인은 또 “작품의 수준을 논하기에 앞서 오현 스님의 문학이 현대시단에 끼친 공적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로 시조시형에 선시를 도입한 선구자가 스님이라는 점이다”고 강조했다.
시상식에는 김남조 김종길 두 원로도 참석 시인이 축하했다. 이근배 시인도 공초 선생을 추모하며 오현 스님의 수상이 공초선생의 구도자적 삶과 깊은 의미의 연관을 갖는다고 말했다. 시상식에는 정진규 이승훈 구중서 신달자 조정래 송준영 홍성란 공광규 이숭원 이지엽 홍사성 서정춘 이가림 성찬경 김초혜 이상국 등 많은 문인과 동선 삼조 홍진 정념 혜관 스님 등이 참가해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