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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담스님 열반 10주기 영산재에서 학술발표하는 목정배 동국대 명예교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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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이 익어가는 그 사무량심이/ 열백번 금강일심으로 마음 맑으면/ 반열반 홀로서 준비하신 큰스님/ 대지위에 장작더미 쌓아올려/ 제단에 불붙여 화중생련(火中生蓮) 소신(燒身)공양 하였도다.”(목정배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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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담스님 열반 10주기 영산재에 참석한 태고종 원로 스님들. 왼쪽에서 두번째가 감로사 주지 지성스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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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27일 당신의 몸을 불살라 부처님께 공양하는 소신열반에 들어 우리 사회에 큰 감동을 주었던 충담 스님을 기리는 추모영산재가 봉행됐다. 태고종 가평 감로사(주지 지성)는 6월 7일 등공사리탑(충담스님 부도) 앞에서 ‘충담 대종사 소신열반 10주년 추모영산재’및 승가사 이전건립불사 기공식을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는 前 태고종 총무원장 인곡, 충남대선사문도회장 도성, 감로사 주지 지성 스님과 정병국 국회의원, 김언식 디에스디 삼호그룹 회장, 정영희 감로사신도회장 등 500여명이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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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담스님 소신열반 10주기 추모 영산재 모습.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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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재에서 목정배 동국대 명예교수는 ‘충담 대선사의 소신공양과 한국불교의 희망’이란 논문을 통해 “충담 스님께서는 항상 무량수불아미타불, 무량광불아미타불, 염광광불아미타불, 환희광불아미타불 등 12광불(光佛)을 염송하시며, 삼매의 불을 일으켜 평소 서원하시던 미증유의 소신공양을 감행, 화중생연을 피우시고 육신등공(肉身騰空)을 하신 것”이라고 밝혔다.
목 교수는 또 “우리가 수계의식을 할 때 촛심에 불을 당겨 팔뚝을 뜨는 의식을 가질 때 찰라의 시겁이지만 뜨거운 열기에 깜짝 놀라게 된다”면서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회신멸지(灰身滅智)하는 소신의례로 입적한다는 것은 그 서원과 발원이 한마음으로 결응되지 아니하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목 교수는 “감로암에서 소신공양으로 열반하신지 10주년이 되는 날 충담 스님의 원력이 시방세계, 한국사회에 새로운 원력과 희망을 점지하는 화염광(火焰光)삼매로 화현하였으니, 우리들도 심핵(心核)삼매의 위력을 발하는 불자가 되어 남북통일과 부처님의 정법 실현하자”고 덧붙였다.
충담 스님은 1930년 삼각산 승가사에서 박심월 화상을 은ㆍ계사로 출가, 62년 권상로 스님 등 종도들과 함께 한국불교의 종권수호를 위한 7일 단식 철야정진을 했다. 70년 7월 1일 태고종으로의 관할청 등록 당시 관등록 사찰 1호로 승가사를 종단에 희사하는 등 종단발전의 공로를 남겨 태고종도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 받아왔다. 스님은 감로사에서 20하안거를 성만하고 <관무량수경>의 16관법 중 일상관(日想觀) 수행을 해왔다. 태고종 승정을 역임한 스님은 조국 통일, 생로병사의 중생 제도, 불교계 화합흥륭 등 세 가지 대원력을 세우고 98년 6월 27일(음력 윤 5월4일) 감로사 미륵부처님 전에서 소신공양을 결행했다. 이는 한국불교사상 드문 일로, 당시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한편, 충담 스님이 70년 전 창건한 서울 왕십리 승가사는 재개발로 인해 이날 호명산 감로사로 이전하는 ‘사찰이전 건립불사 기공식’을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