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18일 동국대에서 개최된 불교학결집대회. 대회 소식에 17일 새벽잠을 설치며 대구에서 상경한 A씨는 접수 후 자료집을 받고 행사장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인도불교, 중국불교, 선불교 등 10개 분과마다 15분 단위로 줄 잇는 발표에 자료집을 넘기며 강의실마다 기웃거리기 바빴다. A씨는 “자료집을 미리 봤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사례2
5월 22일 한국선학회 춘계학술대회가 동국대에서 열렸다. 4명의 발표자가 논문을 발표했다. 정기총회까지 겹친 날이라 발표시간도 토론시간도 촉박했다. 시간 경과를 알리며 목탁을 울리는 사회자 모습은 야경꾼 같았다. 청중도 적어 학회가 열린 다향관 세미나실은 빈자리가 많았다.
학회를 찾는 이들은 항상 목마르다. 발표논문을 미리 받아 읽고 싶은 지적호기심에서, 또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TV 토론 프로그램처럼 질의ㆍ응답이 열띤 토론으로 이어지는 모두가 소통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는 갈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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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10시부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에서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를 주제로 열리는 밝은사람들의 제5회 학술연찬회 교재는 단행본으로 출간돼 이미 전국 서점에 배포됐다. 미리 발표자들의 원고를 모아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운주사 刊)로 출간한 것. 기존 학술세미나는 당일 배부된 자료를 단시간에 발표ㆍ토론하고 끝내던 것이 관례였다.
이를 위해 밝은사람들은 제4차 연찬회를 마친 2007년 12월, 연찬회 주제를 정하고 발표자를 선정했다. 상당수 학회가 대회 2~3개월전 발표자를 정하는 것부터 달랐다. 발표자는 초기불교: 정준영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유식불교: 한자경 교수(이화여대), 선불교: 이덕진 교수(창원전문대), 서양철학: 박찬국 교수(서울대), 심리학: 권석만 교수(서울대), 생물학: 우희종 교수(서울대)로 관련분야의 권위자들이다.
좌장 김종욱 교수(동국대)는 발표자들에게 집필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발표자들과 충분한 소통을 거쳐 최대한 주제에 부합된 논문을 생산했다”고 설명했다. 행사 기획부터 자료집 출간까지 소요된 시간은 2007년 12월 열린 제4회 학술연찬회 후부터 6개월여가 소요됐다.
발표자와 참석자의 소통을 가로막던 교재를 먼저 발간하고 나니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었다.
행사 당일 주제발표 시간을 줄이고, 토론 시간도 늘렸다. 짜임새 있는 진행을 위해 참가자들로부터 이메일 등으로 사전에 질문을 접수받는다. 밝은사람들은 이를 발표자에게 행사 전 전달해 충실한 답변이 가능하도록 했다.
교재 선제공, 사전질문 접수, 토론시간 확충 등 밝은사람들 학술연찬회의 변화가 기획에 의한 것이라면 당일 행사는 철저히 연출된다. 김종욱 교수는 “사회자 역할이 바뀐 것이 이번 학술연찬회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시계만 보는 것이 아닌 교재, 토론내용, 질문 등 행사의 a 부터 z까지 모두 연출자 입장에서 진행할 것”이라 말했다.
이런 학술연찬회의 변화에 대해 박찬욱 소장은 “교계에는 자극을 주고, 교계 밖에는 불교의 진면목을 소개하고자 시도된 것”이라 설명했다. 박 소장은 앞으로도 밝은사람들의 학술연찬회 교재를 ‘밝은 사람들 총서’씨리즈로 행사 전 먼저 발간해 제공할 예정이다.
학회에서 발표자와 참석자는 자료집을 매개로 소통한다. 발표논문이 영어로 쓰였고 한국어로 말이 오가도 학회에서의 모든 대화는 발표논문에 한정될 정도로 자료집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밝은사람들은 주최자와 발표자에 정체됐던 학회를 소통시킬 혈을 제대로 짚었다고 평가받는다.
미래학자들은 “지금은 정보 공유의 시대다. 소통되지 않는 정보가 권력이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철저한 기획과 연출로 학회에 ‘소통’의 바람을 몰고 온 밝은사람들의 ‘욕망’은 변화의 동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