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병원은 병을 고치는 곳이다. 병원에서는 흔히 몸의 병만 치료한다. 한 번 상상해보자, 지친 마음까지 편안히 다스릴 수 있는 병원이 있다면 어떠할지. 돈 없는 사람도 박대하지 않고 문턱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병원이 곳곳에 있다면 얼마나 훈훈할까.
경기도 남양주의 한 마을에 이름난 한의원이 하나 있다. 한의원이니 당연히 한방으로 병을 잘 고쳐 유명할 것이다. 여기에다 더 특별한 비밀이 숨어있다. 이 병원 원장 한의사가 ‘스님’이라는 사실과 이 한의원은 궁핍한 사람에게서는 치료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6월 3일 남양주 ‘삼의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성덕 스님을 찾았다. 병원도 운영이 되어야 하는데, 사정이 어렵다고 돈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아무리 스님이 운영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돈 받습니다. 단지, 돈이 없다고 해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몇 번 인터뷰를 고사한 스님이 말했다. 언제부터 봉사활동을 해왔는지 조차 잊었다는 스님. 별로 내세우고 싶지 않아서인지 자신의 ‘보시’이력을 상세히 밝히기는 꺼려하는 듯 했다.
그럼에도 스님 주위에서 살펴본 이들은 스님이 어떻게 복지행을 실천하는지 알고 있다. 자신의 행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스님을 대신해 사단법인 한국불교금강선원 이홍표 이사장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 침술 봉사 해주신지는 벌써 30년 다 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고 2006년에는 몽골 고려사에서 4박5일 동안 수백 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기도 했다”며 “스님은 항상 대중을 위해 많이 애쓰시는 분”이라 밝혔다.
스님은 매월 둘째 넷째 수요일 오전에는 서울 금강선원 2층에서 침술봉사를 펼치고 있다. 정해진 일정은 이 정도지만 스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 남양주에서도 스님은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마을 의료봉사는 수시로 나가고 조그만 지방 사찰에도 가끔 찾아가 의료봉사를 시행한다.
소문을 들은 환자들이 직접 삼의한의원에 찾아와도 스님은 기꺼이 맞아들인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한의원 2층에 방사까지 마련한 스님이다. 스님은 “편하게 치료받고 가시라고 마련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 ||||
복지적 시각에서 볼 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어지간해선 병원에 찾지 못한다. 아파서 병원을 찾아가면 어김없이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이 그들에게는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스님의 복지행이 소중한 것은 굳이 주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런 어려운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이 부담 없이 병을 고치며 따뜻한 마음까지 가져갈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리라.
스님이 남양주로 내려온 것은 3년 전쯤이다. 약 35년 동안 서울 제기동에서 3대를 이어온 한의원을 운영해오다(스님의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한의사였다) 모두 버리고 ‘사찰 주지’ 소임에 더 매진하고자 남양주로 내려왔다. 그러나 스님의 의술과 보시행을 아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의원을 다시 열어달라 계속해서 청한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결국 다시 한의원 문을 열 수 밖에 없었다.
스님은 삼의한의원에서 매일 오후 1~7시 진료한다. 오전 시간에는 스님 본연의 업무, 즉 사찰 업무를 본다. 삼의한의원 바로 옆에 있는 지혜정사가 스님의 사찰이다.
스님이 한의사라는 사실은 여간 특이한 일이 아니다. ‘한의학’자체가 동양의학이다 보니, 불교사상과 맥이 닿아 있는 경우가 많아 한의사가 불교에 심취한 경우는 있지만 말이다.
“스님들도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 한의학이라는 전문 영역을 갖고 있으니 포교도 봉사활동도 할 수 있어 참 좋거든요.”
소리 없는 봉사가 때로는 훨씬 더 큰 울림을 준다. 요란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귀히 여긴다. 그리고 세상이 어떻든 소리 없이 일하는 이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제 성취감이나 보람 이런 감정도 없어요. 그저 내 의술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쓰였으면 하는 것이지요. 모든 건 있다가도 없어집니다. 앞으로도 저는 그저 그렇게 살 겁니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