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잔타 석굴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한 연구자의 팔순을 기념한 국제학술회의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5월 24일 서울대 박물관에서는 아잔타 등 인도미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월터 스핑크 명예교수(美 미시간대ㆍ80)에게 헌정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문화연구소(소장 이주형)와 청추예술사학회가 공동 주관한 행사에는 한ㆍ중ㆍ일 미술사학자 100여명이 함께했다.
팔순 등을 기념해 열리는 행사는 한국에서는 흔하나 서구권에서는 드물다. 또 한국ㆍ미국ㆍ중국 등 세계의 학자들이 특정 연구자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은 희유하기까지 하다.
학술회의는 스핑크 교수의 ‘아잔타 석굴의 연구 과제’라는 주제의 기조강연으로 시작됐다.
| ||||
“아잔타 석굴은 200여년전 한 영국군 병사에게 발견됐다. 기원전 100년부터 기원후150년까지 서부인도 전역에서 불교가 융성했던 시기에 조성된 석굴은 그 후 300년 동안 불교의 쇠락과 함께 잊혀졌었다. 462년 아잔타에서는 바카타카 왕조의 하리세나 왕 후원아래 괄목할 불교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초기의 석굴이 지역공동체가 이뤄낸 노력의 결실이었다면, 바타카타 시기의 석굴은 궁정 후원자들을 위해 지어졌다.
478년 바타카타 왕조의 하락으로 후원이 줄기 시작했고, 불안해진 승려와 신도들은 장인들에게 불상을 조각하고 불화를 그리게 해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복덕을 얻고자 했다. 급기야 480년대 지원이 끊긴 아잔타는 오랜 침묵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월터 스핑크 교수의 기조강연 및 <아잔타: 덧없는 역사와 도표>(Ajanta: A Brief History and Guide)에서 발췌.
피아 브랑카쵸 교수(美 드렉슬대)는 ‘데칸고원 초기 석굴의 재조명’을 발표했다. 브랑카쵸 교수는 석굴사원을 지방주의(regionalism)과 의고주의(archaism)에 입각해 지리적 영역에 따른 발달양상을 비교했다.
아르빈드잠케드카르 명예교수(印 뭄바이 소마야센터)는 ‘바카타카 시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5~6세기 석굴’을 통해 인도 석굴의 종교양상 변화에 따른 변화를 보여줬다.
야구치 나오미치 교수(日 가나자와대)는 ‘아잔타 석굴 서쪽 그룹 전정 측실의 구조 변천’을, 리총펑 교수(中 북경대)는 ‘인도석굴의 중국화’를 발표했다. 리 교수는 산스크리트어로는 비하라(vihara)로 불리며 승려의 주거용으로 사용된 레나(lena)와 산스크리트어로 차이티야그르하(chaitiyagriha)로 불린 탑묘굴, 산스크리트어로 만다파(mandapa)로 불린 방형굴, 물을 저장했을 작은 지하연못인 (podhi)로 나눈 뒤 중국화된 과정을 소개했다.
드니즈 라이디씨(美 메트폴리턴박물관 큐레이터)는 ‘5세기 후반의 정광불, 운광석굴, 그리고 불교도상’을 통해 메트로폴리턴 박물관에 소장된 불상을 시작으로 수인 등 불상의 특징을 정리했다.
한편 김선경씨(美 남캘리포니아대 강사)는 ‘영천사 탑림 연구 시론’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김씨는 삼계교(三階敎)의 대주성굴과 묘탑부조를 통해 중국 상장례 풍속을 소개했다.
스핑크 교수는 아잔타의 편년(編年)과 구조적인 특성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다. 이주형 교수(서울대)는 “스핑크 교수는 수업 없는 계절이면 항시 아잔타에 머물렀을 정도로 세속적 관심 없이 아잔타에만 몰두했다”고 말한다. 스핑크 교수는 1960년대부터 아잔타 퍼즐 맞추기(스핑크 교수의 표현에 따름)에 매진하며 61편의 논문 등을 남겼다. 현재 아잔타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6권 규모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