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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 : 김응철(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불교인재개발원 원장)
- 주최 :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
- 후원 : 조계종 포교원
- 일시 : 2008년 5월 14일
- 장소 :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
아난 존자는 BC569년 성도 후 21년인 세수 55세에 붓다의 시자가 되어 전법의 교화 후기 25년의 세월과 열반 그리고 그 이후 붓다의 생애와 가르침을 증명합니다. 붓다의 일생 가운데 전법 후기 시기. 다음은 하안거를 나시며 교화를 펼치신 측면으로 바라본 연표입니다. 현재 조계종단에서 연구 중인 정확한 붓다의 생애 연표의 근거는 80여 가지로 매우 다양합니다. 다음의 연표는 제가 정리한 연표이기 때문에 변동의 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해 주십시오.
BC569년(55세) : 왕사성에서 하안거(일설에는 사위성)
기바가 빔비사라왕 알현
BC568년 : 앙굴리마라 제도.
BC567년 : 빔비사라왕과 위제희 왕비 사이에 아자타삿투 출생.
BC564년 : 사위성 기원정사에서 하안거/ 61세에서 78세까지 18년간.
BC563년 : 사위성에서 하안거.
BC562년 : 78세까지 16년간 사위성에서 하안거.
BC551년 : 아자타삿투 왕위 찬탈. 데비왕비 자결. 꼬살라국과 전쟁
BC548년 : 꼬살라국 태자 비두다바가 왕위 찬탈
BC546년 : 사위성 기원정사에서 하안거
비두다바왕 카필라성 공격 석가족의 멸망
BC545년 : 왕사성 영축산 유행
사리불ㆍ목련존자 열반
BC544년 : 바이샬리 벨루바에서 하안거
3개월 유행중 춘다의 공양(전단향 나무 버섯 요리)을 받고 발병
2월 15일 완전한 열반에 드심
초기의 출가 수행자는 붓다에게 직접 설법을 들은 제자였습니다. 비구 47명, 비구니 13명으로 총 60분의 승려 제자가 있었으며, 10대 제자라는 이름으로 열거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경전에서도 기록의 차이가 보입니다. <아함경>에서는 아난 존자가 5회, 수보리 존자가 2회 거론됩니다.
붓다께서 안거를 나신 기원정사의 연원을 살펴봅시다. 터만 남은 현재의 유적으로 당시의 규모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붓다 제세시 인도에서 가장 크고 장엄했던 사원이라는 것입니다. 붓다께서 거주하시던 향실(금당) 주변에는 80명의 장로가 거쳐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사원 벽화가 붓다의 열반 이후 그려진 것으로도 추정됩니다. 발굴된 기원정사의 크기는 5억4000만금이 희사되었다고 하며 약 3만7000여 평으로 12만1404㎡로 추정합니다. 붓다의 성도 후 6년 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난 존자의 시봉에 주목을 해봅시다. 다문제일 아난 존자는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들은 비구 제자 가운데 으뜸이었습니다. 마음 챙김을 가진 자들 중에 가장 뛰어나 붓다의 가르침을 호지(護持)하였습니다. 교화 전기에는 사리불 존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제자들이 시봉한데 반해 교화 후기에는 아난 존자가 시봉을 전담하여 시자들 중에 으뜸이 됩니다.
이번 대중 강좌의 취지에 맞춰 우바새와 우바이에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재가불자 십대제자 중에 몇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앙굿따라닛까야> 제1권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부처님께 최초로 귀의한 귀의제일의 우바새는 따빳수와 발리까 상인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미얀마로 향하는 대 상인이었습니다. 초전법륜을 하기위해 샤르나트의 녹야원으로 향하는 붓다를 뵙고 공양을 올립니다. 이에 대한 답례로 붓다는 가사와 발우를 내립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현재까지도 불교 성지를 발굴하면서 그 당시 붓다에게 받은 발우를 찾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고 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에는 1995년에 설립된 한국의 사찰 ‘고려사(주지 조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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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제일 우바새는 ‘급고독 장자(아나따삔디까 장자)’입니다. 장자는 당시 제일의 재가신도로서 붓다께서도 보시자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라고 칭찬하신 바 있습니다. 장자는 코살라국의 수도 싸밧티의 대부호이면서 상인이었으며, 무의탁자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장자가 붓다를 처음 뵌 것은 붓다의 성도 다음 해에 사업상 마가다국의 라자가하(왕사성)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동이 트기도 전에 죽림정사로 달려간 장자는 새벽 선정에 들어계시는 붓다에게 예경을 올립니다. 붓다는 장자에게 가까이 앉으라고 권하며 “장자여! 어떤 사람은 번뇌의 불이 모두 꺼져 조용해진 사람이다. 착하지 못한 불선법을 짓지 아니하며, 오욕락(五慾樂)의 대상에 묻지 아니하고 가까이도 하지 않는다. 조용한 곳에 이르러서 업(業)으로 받은 몸이 없다. 그런 사람은 모든 시간 편안히 잘 수 있다.” 이로써 장자는 붓다의 제자로 귀의하게 됩니다. 장자는 붓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코살라국의 사위성으로 오셔서 안거를 나시기를 청하였고 왕사성에서 사위성으로 오시는 동안 하루에 1요자나를 이동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 거리마다 절을 하나씩 지었습니다. 1요자나란 성인 어른이 소 달구지를 끌고 점심을 먹고 해질 때까지 걸어가는 거리로 10시간을 소요하는 40km라고 합니다. 총 45개의 절을 짓고 사위성에는 기원정사라는 큰 절을 지어 공양을 올립니다. 붓다께서는 기원정사에서 16안거를 지내시면서 많은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우바이 십대 제자 중에서 보시제일은 ‘미가라마따 위사카’입니다. 남편 ‘미가라’를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며 내조를 잘 하였고, 20명의 아들과 딸을 낳고 120세가 되어서도 늘 젊음을 간직했다고 합니다. 목건련 존자의 감독 하에 강당을 건축하였는데 1000개의 승방을 만들어 승려의 수행을 도왔습니다. 붓다께서 사위성에 계실 때 위사카에게 “여자가 네 가지 능력을 갖추면 이 세상에서 힘을 얻으리라. 첫째, 남편이 하는 사업에 대한 기술적인 능력과 관리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남편이 하는 사업장의 인력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남편의 미움을 받을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남편이 벌어온 재산을 잘 지키고 관리하여 도둑맞지 않고 탕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붓다의 교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 됩니다. 위의 교화ㆍ설법 교화ㆍ수행 교화ㆍ실천 교화가 그것입니다. 위의 교화란 계행을 바탕으로 하는 철저한 실천 행으로 자세와 몸가짐의 위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도 모든 승려가 한 자리에 모이면 철저한 계행을 가장 강조하셨습니다. 설법 교화는 갖가지 비유법을 통하여 상대의 근기에 부합되게 구체적인 방법으로 깨달음의 길을 열어 보이며 자비희사(慈悲喜捨) 의 사무량심을 설법하셨습니다. <쌍윳따니까야>를 읽어보십시오. 500페이지의 열권으로 정리되어 방대한 분량입니다만 체계적으로 붓다의 설법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는 초심자가 읽기에 무리일 수 있습니다만 법수(法數)를 따라 단계별로 11단계까지 분류되어 따라 오를 수 있습니다. 수행 교화는 실참실수(實參實修)를 통한 교화로써 팔정도를 중심으로 수행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실천교화는 중생구제 활동을 통한 교화입니다.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교화하셨고, 중생이 너그럽게 이롭기를 실천하셨습니다.
붓다 설법의 특징은 대기설법입니다.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하지요. 근기에 따라 설법하시되 표준 근기는 중품중생의 부정취 중생입니다. 깨달음을 향한 선근의 종자를 지닌 중생을 의미합니다. 먼저 비구ㆍ비구니에게 그리고 우바새ㆍ우바이에게 법을 설하셨고 그 다음에는 외도들을 위하여 설하셨습니다.
현재 우리가 절감하는 재가불자 인재의 부족에 대한 대안으로 지도력을 갖춘 우바새ㆍ우바이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야겠습니다. 합당한 위의를 갖출 수 있도록 장기적인 안목으로 토양을 가꿔야 할 것입니다. 팔정도 법회의 활성화에도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사성제의 체득을 수행을 통해 정진해 나가길 권유합니다. 그 시작은 관찰지이며 분석하고 판단함을 통해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