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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한강 잠실지구 잠실선착장 잔디밭. 오후 1시가 되자 모여 있던 사람들 사이로 경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원불교식 경종 타종 의식이 시작되자 종교인들이 각자 줄을 서, 경건한 몸짓으로 행사에 동참한다. 이날 행사는 4대 종단 여성 성직자들이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을 지지하기 위해 한강 시민공원 잠실지구에서 펼친 ‘생명의 강 모심 여성 성직자 공동기도회 및 순례 행진’이었다.
우리 강을 지키기 위해 불교ㆍ개신교ㆍ천주교ㆍ원불교 4대 종교 지도자 20여명이 100일 도보순례를 기약하며 김포 애기봉에서 발걸음을 뗀 지 99일 째 됐던 5월 20일, 그 걸음걸음이 마침내 한강으로 돌아왔다. 99일의 의미는 역시 남달랐다. 한강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4대 종교 여성 성직자들이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생명 평화의 간절한 의지를 나눴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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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행사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여성 성직자들의 속에서 불쑥 남자 성직자가 마이크를 잡고 나섰다. 성염 신부(前 교황청 대사)가 격려 인사를 전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저는 지방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땅에 씨앗을 심으면 싹이 움틉니다. 그 때의 기쁨이 참 큽니다. 땅에 얼마나 생명이 가득한지 느끼는 순간이니까요. 이 생명 가득한 땅을 굴삭기로 파헤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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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시간은 행사에 참여한 여성 성직자 대표들의 동참 인사 한 마디로 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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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들이 물길 위에 존재하고 물로 인해 살아갑니다. 돈의 가치로, 개발 논리로 이 강물을 죽이려 하는 것에 우리 여성 종교인들은 분연히 일어납니다. 순례단 여러분이 99일 발자취 속에서 보여준 상생 화합 정신이 만생명의 화합으로 결실을 맺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원불교 김인경 교무)
“우리가 가진 생명에 대한 감수성으로 마음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생명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개신교 유근숙 위원장)
“강 살리는 마음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발원합니다.”(불교 도현 스님)
“그제 비가 내리는 것을 보니, 자연의 신음소리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산을 자르고 강을 뒤엎어 파괴하려는 발상을 어찌 국가가 할 수 있습니까. 나무도 풀도 물도 있는 그대로 놓아주고 좋은 모습을 함께 하도록 각자 맡은 몫을 해내기를 기도합니다.”(오순덕 마리아 수녀)
이어 여성 종교 성직자 대표들이 준비한 공동 선언문을 낭독했다. 도현 스님, 윤문자 목사, 서 아구스티나 수녀, 최은종 교무가 각 종교를 대변할 목소리가 되어 선언문을 읽어내려 갔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지금까지 부끄럽게 살아온 삶을 참회하고, 모두 함께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여성 성직자들이 결단 있는 삶을 꾸리겠다는 서원과 의지를 담아냈다(선언문 전문 기사 마지막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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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성 성직자 대표들의 선언문에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단장 이필완 목사는 “아름답다, 기쁘다”는 말을 연거푸 외치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이 목사는 “도보 순례를 하다 서울에 도달해 보니 우리가 역부족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정권은 여전히 한반도 운하사업에 매달리고 있다”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함께 기도하는 일 밖에 없다”며 순례단을 독려했다.
1부의 마지막은 도보 순례단에서 함께한 박남준 시인의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시 낭송으로 마무리 됐다.
행사가 갈무리 되고 ‘생명의 강 모심 행진’이 시작됐다. 순례길이 이날 역시 계속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람들을 설교한 것은 아니었다. 한강변을 묵묵히 걸으며 지나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보였다. 잠실선착장에서 동호대교 하단까지 약 50km 거리를 도보하며 이들은 이날도 생명 존중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사회 속에 한 줄기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걷고 또 걸었다.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그리고 한강. 이들이 돌고 돌아 5개의 강을 순례하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도보 순례단 이원규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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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강을 ‘수돗물’로만 접하고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강변에서 뛰어놀고 물장난도 치는 등, 강이 우리의 생활 터전이었는데 말이에요.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영산강이나 금강 하구를 둘러보십시오. 농업용수로도 부적절한 강물로 변했습니다. 이런 강의 모습을 지켜 보면, 개발 논리에서도 벗어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4월 총선 때 폐지했던 ‘한반도 대운하’ 추진 실무 작업을 위한 국책사업지원단을 부활시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재오 의원이 종교환경회의 공동대표 수경 스님에게 ‘대운하 관련 끝장 토론’을 제안한 와중에 열린 이날 행사. 생명의 강 도보 순례단은 그들의 발끝으로 ‘강을 살리고 자연과 상생하는’ 삶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회향은 앞으로 4일 남았다.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생명의 강 살리기 종교여성 공동 기도문>
생각없이 흩어져 살던 우리를 부른 것은 당신입니다.
고속의 기계덩어리에서 내려 맨발로 걸어오라, 짓궂게 부른 것도 당신입니다.
서러운 비수 하나 가슴에 품고, 견디며 삭히며 흘러왔건만
백두대간 몸통을 가르는 죽음의 대운하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당신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유언처럼 간곡히 부르십니다.
오, 하느님, 부처님!
살려 달라 매달려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인데,
거꾸로 당신이 우리를 향해 애원하시다니요?
무력한 당신, 한없이 작은 당신, 아직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당신,
한 중생이라도 더 구제하기 위하여 극락 언저리를 서성대는 당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아래로 아래로 오랜 세월 흐르는 강물은 바로
당신의 눈물입니다,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모든 창조물은 당신의 선물,
천지에 어느 것 하나 당신의 모태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온 우주만물에 깊이 새겨진 하느님의 흔적,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세계가 한 송이 꽃이라 했거늘, 분별심을 내어 저 강물의 숨통을 틀어막는 자 누구입니까?
더 잘 살려는 무조건적 욕망, 더 많이 가지려는 부질없는 사람,
빠르게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것만이 능사라고 부추기는
거짓진리에 속아 당신을 배반해온 우리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십시오.
무릇 사람은 어머니 뱃속 양수에서 유유히 헤엄치다가 세상에 나옵니다.
사람의 한 생에 온 생명의 계통발생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그래서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어느 철학자가 그랬습니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 없이는 생명도, 문화도, 역사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 갸륵한 생명의 순환이 예서 끊어지지 않도록,
오고 올 세대 역시 강물 따라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살림의 지혜를 허락해 주십시오.
인디언들은 사람 다니는 길에서 바윗돌 하나를 치울 때조차도
그것이 일곱 세대 후에 미칠 영향을 따져본다고 합니다.
말을 타고 부지런히 달리다가도, 문득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조급증에 걸린 우리, 이러한 인디언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강물의 리듬에 맞추어 천천히 걷노라니,
편의주의와 실용주의와 이기주의의 삼독(三毒)에 찌든 우리의 자화상이 떠오릅니다.
하늘의 뜻쯤이야 가볍게 능멸하고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양 으스대는 우리의 오만방자함이 가슴을 찌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생명 걸음 걸음마다 참회의 눈물을 뿌립니다.
이 눈물이 바리데기 생명수 되어 죽어가는 어머니를 살릴 수만 있다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눈물샘인득 파지 못하겠습니까.
종교는 달라도 진리의 뿌리는 하나,
만물이 한 배(胚)에서 나와 한 사랑을 먹고 사는 식구요 생구(生口)인 것을 믿습니다.
생멸의 강을 모시는 일은 나를 모시는 일이요, 너를 모시는 일입니다.
녹색별 지구를 살리는 일이요, 만물의 어머니를 살리는 일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님과 소태산 대종사님의 마음에 연하여
오늘 4대 종단의 종교여성이 일심으로 간구하오니,
부디 이 땅에서 죽임의 굿판 대신에 신명나는 살림의 굿판이 벌어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은 신기루일 뿐,
모두가 골고루 가난해지는 것만이
생명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선택인 것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이제 4대 종단의 종교여성들이 가부장적 개발의 망령에서 벗어나
사랑과 자비, 정의와 평화가 한 데 어우러지는
후천개벽의 새 세상을 열기로 결단하오니,
모쪼록 이 믿음의 싹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지키고 돌보아 주십시오.
받들어 비옵나니, 당신의 듯이 이루어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