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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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 하안거 결제 법어
“수행자는 틀에 박힌 관념의 허상을 벗어나야”
태고종 종정 혜초스님.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이 불기 2552(2008)년 무자년 하안거 결제법어를 발표했다.

5월 15일 혜초 스님은 법어를 통해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진리를 따르면 이것이 모두 도(道)인 것이며, 수행자는 틀에 박힌 관념의 허상을 벗어나야 진정으로 도(道)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무자년 하안거 결제법어 전문.




法 語 - 천년반석 위 옛사람 발자국
菩薩은 間世而生이라 하였습니다. 眞理를 받들고 大衆을 위하여 慈悲를 행하는 慧眼을 가진 사람은 드문드문 생겨난다는 말이지요.
老衲은 지난 解制 때 衆生을 위하는 일이야말로, 精進 중에 精進이니 解制 기간 동안, 世俗에 나아가 菩薩行을 하라고 이른 바 있습니다.
이는 淸淨心이 是佛이요, 平常心이 是道인 까닭에 도를 구하되 마음에서 구하고 道를 행하되 日常에서 행하라는 말이었습니다.

天台智者는 三觀을 敎義로 삼았습니다. 空觀과 假觀과 中觀이 그것입니다. 空觀은 一切가 비어있어 事物의 存在를 否定하는 것이고, 假觀은 모든 事物은 假合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實相은 없으나 現相은 認定하는 것이며, 中觀은 空觀과 假觀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는 中立的 見解를 말합니다. 그러나 空, 有, 眞, 妄이 모두 心地所管인 까닭에 큰 의미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圭峰 宗密같은 이는 “배우는 사람이 空에 대하여 묻거들랑, 空으로 말하고 有에 대하여 묻거들랑 有로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諸法이 爲證之門이요, 正眞之道인 까닭입니다. 어느 한 가지를 固執하면 곧 着에 빠져 참다운 法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海東 第5代 祖師이신 碧松 禪師는 全羅道 扶安 사람으로 俗姓은 宋氏이며, 法名은 智嚴입니다. 28歲 때 鷄龍山 上草庵에 들어가 祖澄 스님을 恩師로 出家하였으며, 주로 扶安 邊山 來蘇寺 碧松窟과 智異山 草庵에 머물면서 修行하시다가 71歲가 되던 해 法華經을 講說하시는 던 중 入寂하셨습니다.
碧松 스님이 出家한 후 正心 禪師를 찾아간 이야기입니다.
“小僧 問安드립니다.”
“어디서 온 衲子인가?”
“參禪의 妙理를 배우고자 왔습니다.”
“나는 道를 가지고 있지 않네. 그리고 보다시피 먹고 살기도 바쁘고 자네가 거처할 방도 없으이.”
碧松 스님은 그날로부터 土窟 하나를 따로 짓고 正心 禪師와 같이 나무를 해다 팔며 생활하였습니다. 碧松 스님은 산에 오를 때마다 正心 禪師에게 물었습니다.
“부처는 누구입니까?”
“오늘은 좀 바빠서 말해줄 수 없네.”
“스님께서 깨치셔서 얻은 道理만 일러 주십시오.”
“산에 가서 빨리 나무나 하세. 다음에 시간 있을 때 말해 주겠네.”

正心 禪師는 이렇게 3년이나 대답을 미루어 왔습니다. 碧松 스님은 이곳에 더 있어 보았자 正心 禪師에게서 아무 것도 얻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떠나기로 마음먹고 禪師가 없는 사이에 짐을 꾸려 나가면서 供養主 菩薩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떠납니다.”
“별안간 무슨 소리입니까?”
“3년이 지나도록 道를 가르쳐 주지 않으니 더 기다릴게 없습니다.”
“그래도 正心 스님이 오시면 보고 가시지요.”
“그냥 떠나겠습니다.”

碧松 스님이 鉢囊을 지고 길을 막 떠나자 正心 스님이 나무를 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碧松 스님이 떠났습니다.”
“왜 떠났는가?”
“道를 가르쳐 주지 않아 화가 나서 떠났습니다.”
“무식한 놈. 내가 가르쳐주지 않았나! 제 놈이 그 道理를 몰랐지. 자고나서 인사할 때도 가르쳐 주었고 산에 가서 나무할 때도 가르쳐 주었지.”
공양주 보살이 물었습니다.
“그런 것이 道입니까?”
“道가 따로 있나. 만일 道가 따로 있다면 그것은 道가 아니라 煩惱지.”
後日 이 말을 들은 碧松 禪師께서 크게 깨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行住坐臥 語黙動靜이 眞理를 따르면 이것이 모두 道인 것이지요. 修行者는 틀에 박힌 觀念의 虛想을 벗어나야 眞正으로 道에 이를 수 있습니다.

世上이 변하고 混濁하다보니 우리 僧門 역시 걱정스럽습니다. 어떤 이는 修行을 한다고 山中에 들어앉아 無爲徒食하며 我慢만 키워가고 있으며 어떤 이는 世俗의 名利에 貪着하여 出家僧의 本分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可憐狗被象皮者 欺弄群機不知罪
鸚鵡萬語鼠不動 獅子一吼狐列惱
가련하다. 개가 코끼리 가죽을 둘러쓴 자들이여.
대중을 속이고 희롱한 죄를 알지 못하는구나.
앵무새는 아무리 짓껄여봐도 쥐새끼도 꿈쩍 않지만
사자의 포효일성은 승냥이도 두려워한다네.

이 偈頌은 어느 元老 스님이 工夫하지 않고 利潤만 追求하며 詭辯으로 世上을 살아가는 近來의 僧伽 風潮를 詰難하는 말입니다.
佛菩薩의 玄義와 歷代 祖師의 句偈가 恒河沙처럼 많으나 머리로만 理解할 뿐 體達하여 覺果를 얻으려는 勞力을 하지 않는다면 金句聖言이 무슨 所用이 있겠습니까?

이번 夏安居에는 생각을 바꾸고 姿勢를 가다듬어 一錐石穿의 忿心으로 佛智之見을 開示悟入하시기 바랍니다.

千年石上古人蹤 萬丈巖前一點空
明月照時常皎潔 不勞尋訪問東西
천년반석 위에 옛사람의 발자국
먼길 바위 위에 한점 푸른 하늘
밝은 달을 비치어 언제나 환하거니
동쪽 서쪽 찾기에 괴로울 것 하나 없네.

太古叢林 方丈 慧草
김성우 기자 | buddhapia5@buddhapia.com
2008-05-16 오후 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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