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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의 삶으로 행복해요-이태화 민다무역 대표

“뭘 바라고 하는 것은 보시가 아닙니다. 절에 가서 등 달고 기왓장에 이름 쓰면 업장소멸 됩니까? 조건이 붙는 ‘보시’는 보시가 아닙니다.”

보시전문가(?) 이태화 (주)민다무역 대표(54)가 설파하는 보시의 의미다. 4월 29일 민다무역 회의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정열적인 카리스마가 넘쳐흘렀다. “부처님 제자로서 보시는 곧 보살행이기에 한시도 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그의 보시철학이다.

“보시도 처음 마음냈을 때 행동에 옮겨야합니다. 생각을 오래하면 욕심이 자라나서 보살심을 녹여버립니다. 항상 ‘공수래 공수거’를 떠올리죠.”

재력이 있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불철주야 돈 벌기에 골몰한다. 요즘 이태화 대표는 부동산 개발업에 눈을 돌렸다. 중산층을 겨냥한 실버타운을 짓고 그 수익을 돌려 서민을 위한 무료 임대아파트를 짓는 것이 그의 목표다.

한 때 철인 스님(안일사 주지)을 은사로 출가생활을 하기도 했던 이 대표의 법명은 정묵(定?), 호는 무난(無難)이다. 그의 호를 딴 무난장학회도 운영한다. 고3 말이던 1972년 10월경 불교서적에 심취해 출가를 결심했다. 양산 통도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범어사ㆍ통도사 강원에서 공부했다. 봉암사에서 두 철 안거에 들기도 했다.

군 제대 후 절로 돌아가지 않고 경남대 무역학과에 진학해 수출기업에 입사했다. 1991년 피혁의류수출업체인 (주)민다무역을 창업했다. 첫 해 90만불의 수입을 올린 이래 수출에 박차를 가해 수출 1500만불을 달성했다. 그 공로로 2007년 3월 상공의 날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남보다 사회진출이 늦어 주말 휴일도 없이 열심히 일만 하던 그가 보시에 눈을 돌린 계기는 IMF를 겪으면서. 이 대표는 “첫 사옥을 샀던 1998년, 넘쳐나는 실직자와 불우이웃을 보며 ‘기업하는 사람의 사회적인 책임’을 실천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한다. 인근 면남초등학교에 결식아동 6명을 지원한 것이 보시행의 첫걸음이었다. 직원들과 함께 면목7동에 있던 사옥 옥상에서 매주 토요일 점심 무료급식도 시작했다. 50여명 모이던 무료급식은 사옥을 군자동으로 옮긴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이어져 매주 200~300명이 찾는 규모로 성장했다.

이후 모교인 경남대에 매년 4명 장학금 지급, 장안초등학교 결식아동 6명 지원, 광진노인복지관ㆍ자양복지관 광진푸드마켓ㆍ인덕원ㆍ군자동 거주 차상위빈곤계층 지원, 한국노인의 전화 및 연화원 후원, 광진구청 불자회 후원 등 끝없이 보시행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 결산해보니 이런 식으로 사회에 환원한 돈이 1억6천300만원에 달했다.

이 대표의 명함에는 (주)민다무역 대표 외에 한울촌 촌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져있다. “2001년 한울촌 법인을 설립한 후 시작한 노인 일자리 연계사업이 난관에 부딪쳐 아이디어도 필요했고 복지에 대한 전문성과 실천기술을 배울 생각에 2002년 한림대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이 대표는 “그곳에서 원우 2명이 노인전문요양시설 너싱홈(nursing home)을 제안해 서울 광진구 능동에 2004년 10월, 10억원을 들여 한울촌 너싱홈을 개원했다”고 설명한다. 당시 너싱홈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형태여서 보건복지부에서 두세 차례 한울촌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현재의 사옥도 리모델링을 거쳐 너싱홈으로 꾸밀 계획이다.

2003년 불교복지이론을 배우고자 동국대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커리큘럼을 대해보니 불교사회복지 이론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교학부장 김호성 교수와 일본불교대 사회복지학부 박광준 교수를 만나 불교사회복지 이론 정립의 시급함을 토론했다. 마음이 통한 이들은 의기투합해 발원했다. 불교사회복지 개론서를 만들어보자고.

2007년 1월 이들의 ‘결사’는 이루어졌고, 이 대표는 박광준 교수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그 첫 결실이 올 2월 13일 열린 ‘불교사회복지란 무엇인가’ 심포지엄으로 나타났다. 내년 2월경 2차 심포지엄을 거쳐 내년 말 <불교사회복지 개론>이 발간된다.

“각 사찰마다 특히 교구본사와 A급 말사는 복지시설을 하나 이상 자체 운영해야한다”는 이 대표는 “시줏돈을 회향하는 방법으로 복지관을 운영하는 것은 사회에 환원하는 최고의 지혜이자 인재들이 일할 터전을 공급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이태화 대표에게 왜 보시를 하냐고 물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부처님 가르침이니까 제가 하는 겁니다. 상구보리를 이루지도 못했는데 저라고 깨달음에 대한 욕심 없겠어요. 다만 지금 처지에 수행에 전념할 형편이 되지 않으니 상구보리는 뒤로 미루고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하화중생으로 눈을 돌린 것이지요. 재물은 잠시 제가 보관하고 있는 것이니 가지고 있는 동안 잘 관리해 유익하게 써야합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후진 양성을 위한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돼야 한국불교에 미래가 있다”고.
강지연 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8-05-08 오후 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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