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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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잘 하는 비법은 화술 아닌 경청”
특집칼럼-부처님의 대화법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 중에서-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셨다. 그때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께 나아가 문안 올리고 한쪽에 물러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 이름은 ‘고르게 일으킴[等起]’이라 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고르게 일으킴이란 이른바 믿음을 일으키고, 계율?듣기?버리기?지혜를 고르게 일으키는 것이니라. 이것을 고르게 일으킨다 하는 것이요, 이름을 고르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니라.”
<등기경(等起經)>

김춘수의 시 ‘꽃’에는 우리네 마음이 그대로 들어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가장 첫 단계가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 주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과정을 통해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부처님께서도 이런 중생의 소망을 일찌감치 아셨던 듯싶다. 불경 속의 부처님은 법문을 하면서도 늘 상대방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 준다. “사리불이여.” “아난다야.” “급고독장자여.” 경전을 읽으면 부처님께서 따뜻하게 이름 부르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부처님께서는 이름을 불러 주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등기경>에서 볼 수 있듯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면 그 이름의 뜻을 풀어 줌으로써 더욱 의미 깊은 만남으로 이끈다. 이름에 대해 단순히 뜻풀이만 하신 것이 아니다. 이름 뜻만 잘 새겨도 바르게 수행하고 정진할 수 있도록 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부처님처럼 접근하면 친밀감 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흔히 대화를 잘 하려면 뛰어난 화술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대화를 잘 하는 가장 큰 비법은 ‘잘 듣기’다. 즉 경청을 해야 한다.

부처님은 경청의 명수였다. 상대방이 말을 하면 중간에 자르거나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잘 들어 주셨다. 그저 듣기만 하는 것을 경청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화 상대에게 잘 듣고 있다는 것을 표현해야 제대로 된 경청이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현재 잘 듣고 있는 중이며 또한 잘 들었다는 것을 항상 표현하셨다. 누군가가 와서 긴 질문을 하면 그 내용을 요약하여 다시 물음으로써 제대로 들었는가를 확인하시곤 했다. 가령 어떤 비구가 “세존이시여. 이제 저를 위해 간략히 법을 설하여 주소서” 하고 여쭈면 부처님은 “그대는 즐거운 마음으로 ‘저를 위해 간략히 법을 설하여 주소서’ 하고 말하였는가?”며 다시 물으셨다. 이밖에 대화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초점 주기, 선도 반응 등 반영적 경청의 방법을 적절히 활용하셨다.

이렇게 잘 듣는 태도와 방법만 익혀도 ‘대화 잘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대화하는 동안 끊임없이 지지와 격려를 해주신다. 경전에 흔히 등장하는 “착하고 착하다[善哉善哉]”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부처님은 상대방이 법문을 청하기만 해도 “착하고 착하다”며 반기셨고, 법문 내용을 잘 알아들으면 “선재, 선재라” 하고 기뻐하셨으며, 법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다시 물어도 “훌륭하고 또 훌륭하다”며 기특해 하셨다.

상대방의 말을 존중하며 수용적으로 따라가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부처님 대화의 비법이다.

또 하나는 부처님께서는 상대방의 어법에 맞추어 대화를 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연령에 따라 쓰는 말이 다르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점까지 고려해서 대화했다. <비하경(卑下經)>에서 부처님은 당신의 대화법을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나는 세상 사람이 아는 바와 같이 그렇게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를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비유하면, 어떤 그릇이 어떤 곳에 있을 때는 건자라 하고, 어떤 곳에서는 발우, 어떤 곳에서는 차류, 어떤 때는 비실다, 어떤 때는 바사나, 어떤 때는 살뢰라고 하는 것과 같다.”

부처님처럼 상대방의 입장과 수준에 맞추어 대화를 해야 진솔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청소년들과 대화한다면 적어도 ‘오덕후(오타쿠-마니아)’같은 인터넷 용어쯤은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또한 상대방이 갖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대화했다.
부처님 제자 중에 이십억귀 비구가 있었다. 수행을 해도 별 성과가 없자 비구는 환속해서 보시로 복이나 쌓으며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속세에 있을 때 거문고를 잘 탔는가?”
이십억귀 비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부처님께서는 “거문고 줄을 너무 조이거나 늦추면 소리가 좋지 않듯, 수행 역시 너무 급해도 느려도 진전이 없다”고 저 유명한 거문고줄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이십억이경(二十億耳經)>에 나오는 예화다.

<갈담경(竭曇經)>에서 한 우바새가 “모든 괴로움의 근본은 애욕”이라는 설법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부처님은 그 우바새에게 적절한 소재를 곧바로 찾아내신다.

“만약 그대의 의부모가 덧없이 돌아가신다면 어떻겠는가?”
그제야 우바새는 화들짝 놀라며 부처님 말씀을 알아듣는다.

“장하십니다. 의부모의 비유를 잘 말씀하셨나이다. 제게 의부모가 있어 날마다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묻나이다. 안부를 여쭈러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도 근심이 생기거늘, 하물며 의부모가 돌아가신다면 어찌 다만 슬퍼하며 괴로워할 뿐이겠습니까. 저는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모든 괴로움의 근본은 애욕인 것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소유한 것, 자신이 경험한 것을 예로 들 때 가장 실감하는 법이다. 부처님처럼 이런 점을 활용하여 대화한다면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절묘한 효과를 볼 것이다.

경전을 통해 부처님의 대화법을 살펴보면 이렇게 상대방의 근기에 따른 자상한 수기설법(隨機說法), 온갖 자원과 방법을 활용하는 절묘한 방편시설(方便施設)이 들어 있다. 오늘날에 적용할 수 있는 소재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듣기, 그리고 잘 듣고 있음을 표현하기다. 그런 연후에 각종 대화법을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권경희 상담심리전문가(불교상담개발원 사무총장) |
2008-05-07 오전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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