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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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의 삶으로 행복해요-박종갑ㆍ박상숙씨
“도반과 함께 항상 부처님 찾습니다”
서로 의지하며 10년째 매일 아침 아미타 정근을 하고 있는 사진 왼쪽 박상숙씨 사진 오른쪽 박종갑씨.

무엇이든 꾸준하게 해 나가기가 힘들다. 일껏 하다가도 그만두고 싶은 경계가 금세 닥쳐오기 때문이다. ‘작심 3일’이라는 말도 그만큼 좋은 습을 내 몸에 붙이기 힘들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
그런데 매일 아침 염불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도 이천에 거주하는 박종갑(64ㆍ법명 미타행)ㆍ박상숙(65ㆍ법명 수월행)씨가 그 주인공이다. 염불수행 도반으로 살아온 지 벌써 10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해 가며 바라밀로 나아가기 위해 ‘정진(精進)’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만난 장소는 박종갑씨가 운영하는 한복집이었다. 박씨는 동네에서 40년간 한복집을 지켜왔다. 일을 하면서도 ‘나무아미타불’을 놓지 않는 박씨. 한 자리에서 삶을 가꿔온 그의 정성이 담뿍 묻어나는 가게 자리 역시 박씨 삶 속의 정진 현장인 셈이다.

옆 동네에서 38년간 세탁소를 운영했다는 박상숙씨는 지금은 집안 조카에게 일을 물려준 상태다. 세탁소 일을 접고는 얼마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병간호에 나섰다. 그런 중에도 박상숙씨는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계속해왔다.

이들의 하루는 오전 4시경 시작된다. 일어나면 먼저 깨끗이 목욕재계 하고 각자의 집에 마련한 기도실에 들어간다. 부처님께 108배를 올리고 <천수경>을 봉독한다. 그것이 끝나면 <금강경>이나 <아미타경>을 읽는다. 그리고 ‘발원문’을 통해 그날 하루 동안의 원을 세우고 ‘나무아미타불’ 정근에 들어간다. 이들의 정근은 108염주가 1000주가 될 때까지 계속 된다. 이런 의례를 모두 거치면 꼬박 2시간이 걸린다.

이런 아침이 두 사람에게는 무려 10년 넘게 이어졌다. 박상숙씨는 “이제 삶의 일부가 되어서 아침에 그렇게 정진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도반이 된 것은 10년 전, 동산불교대학에 함께 입학하면서 부터였다. 이천 영원사(주지 성원) 신도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갑씨가 먼저 동산불교대학에 등록한 후 친구 박상숙씨를 ‘끌고’ 들어갔단다. 박상숙씨는 “이 도반이 날 끌고 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아직까지 두고두고 인사다.

이들은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불교기본교리에 대해 배우고부터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더 깊어졌다고 회상한다. 배움 없이 신행활동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그 때부터야 ‘정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며 말이다.

이들은 동산불교대학에 다니기 전에도 신행에는 적극적이었다. 박종갑씨는 매월 초하루에 3000배 철야정진을 해왔었다고 한다. 박상숙씨 역시 불자 집안에서 사찰 찾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독실한 불자였다. 하지만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2%’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배움’이었다. 이들은 동산불교대학을 통해 교리와 사상에 대해 접함은 물론 염불만일회에 가입, 염불정진에 대한 원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는 시절인연을 만났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신행 활동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게 됐다.


정진을 계속 하다 보니 이들이 정진을 하며 세우는 원도 ‘나’와 ‘내 가족’ 등 개인적인 부분에서 ‘이웃’과 ‘사회’로 점차 넓어져갔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원을 세우면 그 가피가 훨씬 빠르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박종갑씨)

이들은 현재 이천지역 동산불교대학 졸업자 20여명과 함께 모임을 만들어 염불봉사(장례봉사)와 군법당 지원, 이천 승가원자비복지타운 후원, 어린이법회 후원 등을 이끌고 있다. 지역불교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 그것이 이들이 현재 매일 같이 세우는 원이기 때문이다.

염불봉사의 경우, 박종갑씨가 염을 하고 박상숙씨는 요령을 흔들며 상가(喪家)를 함께 지켜준다. 특히 돈이 없어 영가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지역 사회에 오랜 기반이 있다 보니 이젠 그런 사람들이 생기면 으레 이들을 찾는다.

“이 봉사를 하고 싶어 동산불교대학에서 불교장례의식도 배웠어요. 어느 날 부턴가, 봉사를 하겠다고 발원했더니 길이 보이더라고요. 이렇게 함께 봉사할 수 있는 것도 부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박상숙씨)

염불봉사 뿐만 아니라 지역에 불교 유치원 하나 없는 상황이 아쉬워 이에 대한 발원을 하다 보니 인근 불교회관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어린이법회를 진행하게 됐단다. 개인의 수행력이 결코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인드라망 처럼 연결돼 있구나 싶다.

이들은 스스로를 ‘그냥 시골 할머니’라 말한다. 맞다. 겉모습은 그저 정다운 우리 이웃이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는 불법을 만났다는 기쁨, 사회 속에서 하나씩 이뤄져가는 원을 세우는 보람 등이 이미 꽉 차 있다. 이웃 중 누군가 이들처럼 사회를 위해 마음을 내고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같은 불자로서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자기 수행에만 바빠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삶에 대한 여유와 복지행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어찌 ‘정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강진 기자 | kangkang@buddhapia.com
2008-05-04 오후 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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