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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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탄생된 붓다의 씨앗
‘부처님오신날’기념 대중강좌『붓다의 생애와 가르침』1. 부처님 일대기를 통해서 배우는 불자 신행
권기현 교수

- 강사 : 권기현(위덕대학교 불교문화학부 교수)
- 주최 :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
- 후원 :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 일시 : 2008년 3월 26일
- 장소 :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

인생이란, 그리고 쉼표를 찍는다. 느낌표일수도 물음표일수도 있지만 왠지 쉼표를 찍어보고 싶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값진 것 인가.’ 고민한 적이 있는데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야만 깨달음을 완성하는 단계적인 길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한 번 짧은 쉼표를 찍는 순간에 나름대로의 인생이 또 다시 정의됐다. 때마다 장소마다 바뀌는 나름대로의 인간 정의법이다. 고타마 붓다께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셔서 열반에 이르는 길을 몸소 모여주신 바를 인간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오늘부터 두 달여간 연재될 붓다의 인생은 불교와 붓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소통의 트라이앵글 관점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여정의 첫 번째 시간. 붓다의 탄생국가인 인도와 인도의 사상계를 전반적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조망해 본다. 이번 강좌는 현재 한국의 사찰에서 불교의 4대 명절을 기념할 특화된 콘텐츠가 없다는 문제제기를 통해 기획되었다.

붓다는 과연 우리 불자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가. 우리는 붓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오늘 강의의 핵심입니다. 붓다의 생애는 붓다 살아생전에 쓰인 것이 아닌 구전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붓다의 생애는 기원전 6~5세기경의 분으로 100년 이후에 제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모나고 뾰족한 돌을 많은 선지식들이 갈고 다듬어 완성된 조약돌을 가지고 오늘날 진실의 붓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인도인들은 역사들 중요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붓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 전생부터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인도인에게 인생이란 한 생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 번의 생애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보편적 생각입니다. 인더스 문명과 함께 인도의 문명은 시작됩니다. 역사의 연대란 책마다 나라마다 들죽날죽 합니다. 자국의 역사와 외국의 역사의 관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붓다의 사상이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일생을 보고자 하는 지금, 삶의 과정을 최대한 엿볼 수 있는데 까지 다가가 봅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는 과거의 작은 눈꽃 하나가 히말라야에서 뭉쳐짐을 더해가며 어마어마한 크기의 눈덩이가 된 것과 같습니다. 너무나 복잡다단해서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의 불교입니다. 인도의 다양성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불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핵심이 있느냐 없느냐 말하기 어려운 부분임이 확실합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붓다의 일생과 이를 통해 불교가 나왔고 그 안에 불교의 가르침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신비적이고 비현실적인 종교의 불교가 과거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실증적이고 현실적으로 붓다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관점이 통합을 이루고 있지 못한 현실입니다. 붓다를 신앙적으로 바라보면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더 나아가 붓다는 현재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는 능력을 지닌 분이라고 생각하는 불자가 많습니다. 실제로 붓다의 능력발휘가 가능하다면 예수도 가능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기독교를 남의 것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에만 빠져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헤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붓다가 해결사입니까? 아닙니다. 붓다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어야만 인간 모두를 제도할 수 있습니다. 보살의 화현이 방편임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종교란 현실을 떠나서 결코 해석되지 않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붓다는 ‘전지자’이지, ‘전능자’가 아니라는 제 생각을 어떻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적인 붓다의 생애는 과도하게 신비적으로 쓰이면 안 됩니다. 현실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현실적인 생애는 종교적인 감흥을 수반하지 못합니다. 지나치게 학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해석해도 안 됩니다. 이러한 울타리 속의 중심잡기로 붓다의 생애는 쓰이고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들어날 경우에는 반드시 상징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즉 불교 문화사적 의미로 강조되어야 합니다. 불교 외적 요소를 이해해야만 불교의 내적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인생과 관련한 삶의 문제에 대한 확신을 가진 분,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주신 분임을 기억해야합니다.

한국불교 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

왜 붓다는 인도에 태어 나셨을까요? <삼국유사>에 신라 불국토설이 거론되긴 합니다만, 왜 이 시대에는 붓다가 태어나지 않을까요? 이러한 물음표를 띄어본 적이 있는지요. 한국의 서울에 붓다의 선근(善根)종자가 태어난다면 과연 붓다로의 완성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인도는 다양성의 민족임을 기억하십시오. 아리안족의 시발지인 인더스문명으로부터 5천년의 시간을 잡습니다. 한국 역사를 반만년이라 하는데 비교가 될 런지요. 역사와 지형 그리고 기후와 생활양식이 바로 고타마 붓다라는 이상적인 성인을 만들었습니다. 4계절 만년설이 있고, 하루에도 몇 차례 기온이 오르내리는 지역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인도입니다. 인도에서 한번 여름을 경험하게 되면 30도 기온이 평균적인 생활 온도가 습이 됩니다.

강은 문화를 통합하고 산은 문화를 전달합니다. 인도는 거의 고립된 경우입니다. 붓다께서 활동하셨던 힌두스탄 대평원은 꼴까따에서 델리까지 기차로 2박3일을 가야하는 크기입니다. 그 옆에는 라자스탄 평원이 있는데 매우 특이한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소설의 배경 또한 사막입니다. 읽어보셨겠지만 사막은 결코 무미건조한 곳이 아닙니다.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과 모래소리가 들리고 낮에는 신기루를 경험합니다. 신비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사막의 문화와 인도문화의 공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에는 고원이 있습니다. 높은 평지와 같은 곳이죠. 해가 발밑에서 떠오르는 느낌입니다. 남인도로 내려가면 해양문화의 발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북인도인들이 바다의 비릿한 냄새를 싫어하는 반면 남인도에서는 생선이 넘칩니다.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다르고 인종도 다른 상황이 인도라고 하는 하나의 땅에 공존합니다. 문다드라비다라고 하는 인도 원주민이 카스트의 노예가 되고, 백인에 가까운 아리안족은 종교적 감수성이 뛰어납니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의 개념을 일치시키고자 하지만, 인도는 티베트인들까지 수용하면서 문화와 국가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붓다가 탄생하신 네팔에 위치한 룸비니도 인도문화권입니다.

인도는 언어자체도 다릅니다. 우리의 방언 개념과 비교도 안됩니다. 인도는 18개의 공용어를 인정하고 있지요. 언어라고 하는 것은 한 민족의 공통어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의 통념인데 인도는 다릅니다. 인도인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도 일차적인 영국식민지의 원인도 있지만 마두라스인이 델리에 오면 영어만이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도 있습니다. 문서 작성에 있어서도 이름 다음으로 언어형태를 쓰는 칸이 있고, 카스트 위치를 기명하게 합니다. 공무원 시험, 대학 입학시험도 문제지가 언어별로 18장입니다. 언어를 달리 사용한다는 것은 사고의 폭을 넓혀줍니다. 언어란 인간의 사고를 개념화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진 인도인은 엄청난 다양함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문화는 생각의 다양화를 낳습니다. 우리의 문화권 내에서 통용되는 원칙이 외국에서는 정 반대의 문화현상을 보일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야만인이라고 낮게 보거나 좋다 혹은 나쁘다 평가합니다. 문화는 절대 좋고 나쁨의 평가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인도는 문화의 차이가 공유되고 융화되어왔습니다. 다양성의 조화로움 속에서 불교의 붓다는 태어났습니다. 다름의 인정이 통용된 것이지요. 인도에서 현재 불교는 사라졌지만 세계 종교와 사상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그 안에서 붓다의 생애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2600년 전의 인도의 붓다를 전달하는 방법의 문제는 현재 심각합니다. 다양성이 아니면 도저히 해석될 수 없습니다. 다양함이 무엇입니까. 분류가 어렵습니다. 혼돈처럼 복잡다단하지만 충돌하지 않는 것은 조화롭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조화란 바로 문화의 不二입니다. 인도문화가 지닌 확장력과 수용력의 조화로운 공존 속에서 바로 고타마 붓다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상으로 붓다의 씨앗이 성장 가능했던 인도의 문화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적 사고의 폭을 확장시킬 때 한국 땅에서도 붓다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가연숙 기자 | omflower@buddhapia.com
2008-04-01 오후 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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