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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충북 제천 정방사로 가는 길. 청풍호반(淸風湖畔)이라 불리는 곳답게 빼어나게 아름답다. 이 풍경 좋은 길은 소문을 듣고 달려온 춘풍가객들로 가득 찼다. 이미 만춘(晩春)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 벚꽃은 가지에서 떨어질 듯 그득하다. 꽃향기가 이끄는 대로, 책향기를 따르는 한 무리가 이 길 위에서 화려한 봄의 향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들은 조계종출판사가 근래 내 놓은 책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의 저자 목경찬 불광담임교수와 그를 따르는 사찰문화답사단이었다.
이들의 이날 목적지는 제천 정방사와 충주 중원미륵사지였다. 서울에서 3~4시간은 걸리는 길도 마다 않은 것은 <사찰…>에서 볼 수 있었던 절집 내 불상ㆍ석탑 등의 구조물과 살림살이들을 살뜰히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정방사로 가려면 산길을 약 40분 남짓 걸어야 한다. 길 가장자리에는 힘차게 생장하고 있는 나무와 꽃, 들풀이 있다. 다만 콘크리트로 메워 놓은 길은 부조화스럽다. 하지만 이런 산길, 이런 여유를 언제 느껴보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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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의상대사의 제자 정원 스님이 창건했다는 정방사는 탁 트인 풍광이 멋진 곳이다. 정방사가 자리 잡은 곳은 7부 능선. 거의 절벽에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좁은 터라 경내를 둘러보는데는 크게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본격적으로 정방사를 살펴본다. 정방사는 관음도량이다.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있기도 하지만 원통보전 옆으로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는 현판이 눈에 띈다. ‘구하라,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이다’. 불교는 물론 자신의 수행을 우선시 하는 종교다. 그러나 중생은 항상 자신이 약할 때 어딘가 기대고 싶어 한다. 관음신앙은 그런 중생들에게 어쩌면 조금 살갑고 포근하게 다가가는지도 모른다.
이 절은 또 지장전이 특이하다. 지장보살상과 마애불 모두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지장보살상의 모습도 여느 절 지장보살들보다 젊어 보인다. 그래서 답사단 중 한 명이 외친다.
“와, 이 지장보살님은 젊어 보이셔서 소원을 빌면 힘차게 들어주실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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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사찰은 대부분 산에 있다. 그래서 ‘산사(山寺)’라는 말이 곧잘 쓰인다. 산에 있는 절을 찾다보면 각박한 현대인, 다음 날 출근이 신경 쓰여 그저 빨리빨리 가고자하는 마음뿐이다. 차로 휙 올라가면 10여분 남짓이면 올라갈 수 있는 그 길을 직접 한걸음씩 떼어 올라간다는 것은 어쩌면, 시간 낭비에 가깝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는 사찰을 찾아서도 마찬가지다. 쫓기듯 고개를 돌려가며 대웅전을 찾아 ‘삼배’를 올리면 임무 완수다. 이렇게 우리는 ‘사찰’이라는 공간을 찾으면서 어쩌면 놓치고 있는 것이 많은지도 모른다.
정방사를 둘러 보면서 잃어버렸던 ‘여유’에 대해 생각했다면 버스를 타고 다시 이동해 찾아간 충주 중원미륵사지는 잃어버린 절터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교통 요충지인 하늘재에 자리한 탓에 여관으로 쓰였느니 병참 기지로 쓰였느니 아직 설이 분분하다.
이곳에서 가장 특징적인 유물은 미륵불. 6개의 돌 조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인데, 특이한 점이 2가지 있다. 하나는 미륵불의 얼굴에만 돌이끼가 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멀리서 보면 얼굴만 하얀 돌 색깔 그대로다. 또 다른 하나는 ‘손’이다. 돌 6개가 이어지는 사이에 손이 있는데 그 손만은 두 돌 조각 사이에 이어 붙어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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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미륵사지를 찾으면 재미있는 것이 꽤 많다. 미륵사지에서도 석등, 석불 등을 살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하늘재 쪽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또 다른 석탑도 볼 수 있다. 또한 칠레 이스터섬 ‘모아이’를 연상케 하는 ‘미륵리 불두’는 그 재미있는 모양에 절로 웃음이 난다.
사실 중원미륵사지는 이제 거의 관광지로 개발되어, 옛 절터 특유의 고즈넉한 맛은 사라진 듯하다. 그래도 사람이 덜 붐빌 때 가보면 혼자서 꽤 이것저것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때로는 미륵사지에서 뛰어노는 다람쥐 한 마리만 봐도 감동적일 것이다.
답사를 마무리하며 목 교수가 말한다.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 걱정하셨죠. 하지만 사찰은 갈 때 마다 다른 느낌을 줍니다. 그러니 적어도 3~4번은 가 봐야 그 사찰을 진짜 봤다고 할 수 있지요. 사찰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참 다양합니다. 여러분들이 창의적이고 독특하게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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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교수가 <사찰…>을 펴낸 이유도 아마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사찰을 둘러볼 여유도 없는 불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또 다른 하나는 쉽고 재미있는 설명으로 불자들에게 각 사찰 고유의 문화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사찰들에 대한 아쉬움. 그렇기 때문에 목 교수와 같이 ‘친절하게’ 사찰을 안내하는 사람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이러한 답사 여행도 계속 필요할 것이고.
절이나 절터를 찾을 때는 몸과 마음을 모두 열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유의미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저 ‘어디 들렀다’는 만족감만 얻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사찰을 찾을 때 좀 더 천천히 살펴보고 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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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더! 저자 목경찬 담임교수가 추천하는 서울 근교 경치 좋은 사찰
* 은평구 진관사
행정구역상은 서울이지만 서울의 느낌은 거의 없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좋다. 그러나 등산로와 연결돼 있어 번잡함을 피하려면 평일 오후 4~5시경에 찾는 것이 좋다. 목 교수는 “조그만 계곡이 끝내준다”고 말한다. 마치 설악산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 것 같다고. 또 하나, 진관사는 옛집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찻집도 좋다.
* 남양주 수종사
목 교수는 수종사를 ‘동방 제일의 풍광’이라 극찬한다. 남양주시 운길산에 있는 이 사찰은 정방사처럼 걸어가야 참 느낌을 알 수 있는 사찰이다. 목 교수는 특히 “양수리쪽 부분이 정말 좋으니 놓치지 말라”고 강조했다. 차방이 좋고 임의로 차도 마실 수 있다.
* 양주 회암사지
사적 128호인 회암사지에는 석등, 보조비 등 볼만한 유물도 많지만 ‘발굴 중’인 절터를 보면서 근원을 볼 수 있다는 사실! 목 교수는 “외국에 나가면 석조 문화재를 보며 감탄하는데 회암사지에 가면 꼭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특히 눈 덮인 회암사지는 무조건 봐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