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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오후 2시경, 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유명한 화순 운주사(주지 정행)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은 사찰 방재대책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강한 바람에 불길은 사찰 안까지 번졌지만 운주사 대중의 발빠른 대처 덕에 보물 제796호 9층 석탑, 보물 제797호 석조불감, 보물 제798호 원형다층석탑, 부부 와불 등 문화재 피해 없이 야산 5㏊만을 태웠다. 운주사 대중들은 산불에서 어떻게 천불천탑을 살렸을까? 운주사 문제희 종무실장에게 당시 상황을 들었다.
산불 발생 20여분이 채 못돼 불길은 연기와 함께 운주사 입구 쪽 화장실 인근까지 번졌다. 산불 인지와 동시에 운주사 대중과 신도 등 누구 할 것없이 119에 화재신고 했다. 정행 스님으로부터 유선으로 방재 지시가 내려왔다. 우선 폭발위험이 있는 공양간과 다실의 가스 밸브를 잠그고, 가스통을 분리해 사찰 전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텃밭에 이동시키라는 것. 정행 스님도 나서 가스통을 옮겼다. 그리고 대중은 정행 스님의 지시에 따라 사찰에 설치된 옥외 소화전 6개를 작동해 대웅전 인근 야산에 물을 뿌렸다. 처음에는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바람이 워낙 강해 역부족이었다. 대웅전 등 전각을 지켜야한다는 정행 스님의 지시에 모두 대웅전을 향해 물을 뿌렸다. 이후 우선순위에 따라 지장전, 산신각, 종무소, 다실, 객실 순으로 물뿌리기를 진행했다. 운주사 대중의 물뿌리기로 불씨는 대웅전 등 전각에 근접하지 못하고 인근 야산만 맴돌았다.
운주사 대중이 가스통을 나르고 물 뿌리기 시작한지 30여분쯤 되 방화수로 준비된 20여톤이 거의 소진될 무렵 소방대원, 산불진화대원이 헬기 7대, 소방차 18대 등을 몰고 순차적으로 도착해 본격적인 진화작업에 나섰다.
당시 화재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운주사 대중의 발빠른 대처가 천불천탑을 살렸다고 말한다. 문 실장은 “평소 먼지가 날릴 때마다 물을 뿌렸던 경험이 화재시 소화전을 다루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운주사에서는 1년에 2회씩 방재훈련을 실시해 대중들의 방재시설 조작이 능숙한 것이 위기상황시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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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의 공공근로 숲가꾸기도 한몫했다. 당시 산불을 목격한 사람들은 “불씨가 강한 바람에 사찰 건물로 옮겨 붙을 태세였지만 이상하게도 불씨는 사찰을 비켜났다”고 말했다. 정행 스님은 “지난해와 올해 두차례 화순군(군수 전완준)에서 운주사 인근의 잡목과 덤불 등 탈만한 것들을 모두 제거한 탓에 불길이 다가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실장은 “대개 간벌한 잡목을 방치해 두는 데 지난 겨울 정행 스님의 지시로 운주사 대중들이 모두 산 아래로 치웠다”고 말해 ‘공공근로 숲가꾸기’는 물론 간벌 후 주변을 정리하는 후속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라 도선 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운주사, 주지 정행 스님과 대중들의 침착한 대응이 없었다면 제2의 낙산사, 숭례문이 될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