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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교육계 공무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를 만나면 매우 ‘정확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복지는 자기 수행이 되는 상태에서 나오는 행동인 것 같아요. 복지 현장에서 만나 뵙는 분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수행에서 복지로, 복지에서 다시 수행으로 이동되는 그의 활동은 고요하고 평안하다. 그렇게 크게 소리 내지 않아도 한 복지단체를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불자들은 ‘상(象) 낸다’는 말을 가장 경계한다.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김씨 역시도 그렇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구구절절 봉사활동 ‘자랑’을 하지 않으려 말을 아꼈다.
하지만 김씨는 ‘목우재’와 회원들에 대해서만큼은 자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듯 했다. 그는 2003년 20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목우재를 결성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이제는 정회원 60명에 후원회원 20명까지 총 80명이 소속된 큰 단체로 성장시켰다. 비결이 뭘까.
목우재는 조금 특이한 단체다. 우선 모두 ‘도반’이라 부르지만 재적사찰은 각각 따로 있다. 즉, 사찰 조직이 아니라는 것. 게다가 참기름 도매 등의 수익사업 구조까지 갖춘 탄탄한 복지조직임에도 사무실은 없다.
“평소엔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요. 봉사활동 나올 때나 정기 산행 때 만나서 이야기하고 친목도 다집니다. 좋은 일 하자는 취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뜻만 맞으면 잘 뭉칩니다.”
허투루 만든 조직이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하지 못했을 것이고 회원 배가 운동 없이 동참 회원을 모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김 회장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과 행동력이 갖춰진 사람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매달 걷는 회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제때 알려주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목우재 회원들과 함께 김씨는 5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서울노인복지센터 급식 봉사와 군법당 봉사 등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3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문산 11ㆍ12연대 군법당 봉사는 목우재의 대표적 활동이다. 특히 12연대 활동을 통해 백성사, 충절사와 백학사 3군데 사찰 250여명의 군장병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 놀랍다. 말로 풀어내면 쉬워 보이지만 군법당 봉사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먹성 좋은 장병들의 먹거리 준비에서부터 매월 아이디어를 짜내 장병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까지, 김씨는 늘 즐겁게 고민한다.
봉사현장을 누비면서도 김씨가 결코 잊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본래 자리인 ‘주부’라는 자리다. 자기가 처한 일부터 잘 해야 바깥일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이 김씨의 지론이다.
취재하다 보니 또 하나 놀라운 점을 발견해 냈다. 김씨가 산수화 및 동양화 지명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도 수행이라 생각합니다. 연꽃을 그리고 문인화를 그리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제가 수행을 열심히 해서 나중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제대로 세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저는 더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