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다보면 길가에 자리한 작은 폐교를 만나게 된다. 광주전남지역 불자들의 자비나눔 공동체인 ‘자비신행회’가 활동하는 보금자리이다.
1999년, 30여명의 불자들이 모여 독거노인 도시락 봉사로 시작한 자비신행회는 노인복지센터, 차문화아카데미, 외국인 노동자센터, 시민선방, 재가화엄학림 등 신행은 물론 사회복지, 불교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같이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지역사회에 실천하고자 하는 자비신행회의 중심에 재가화엄학림 정원채 학장(70)이 있다.
“불교를 바르게 배워 지혜를 키우고, 배운 바를 이웃들과 복지를 통해 나눔으로서 자비를 키우는 것이 곧 부처님 세상 아닌가요?”
실천행을 강조하는 정 학장은 “생활 속에서 활용하지 않고 머릿속에만 있는 알음알이 불교이기보다 하나라도 실천하는 불자로 양성하는 것이 재가화엄학림의 근본정신이다”고 강조한다.
정 학장은 자비신행회를 비롯해 생명나눔실천광주전남지역본부, 광주아시아문화교류재단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도심포교당인 원각사 선우회 회장도 겸하고 있다. 어디에서든 얼굴내기보다 묵묵히 실천행을 하던 정 학장은 불교가 좋고, 부처님 가르침을 직접 따르다보니 하나둘 불교신행과 관련된 직함이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정 학장의 불교입문이 오래된 것은 아니다. 광주에서 중, 고교 교장을 역임한 정학장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타종교를 신앙했다.
“제 담당이 국어였지만 좋은 시나 수필 등 진정한 문학을 가르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18년간 고교 3학년 진학지도를 하다보니 교과서만 달달 외워서 가르쳤던 것이죠”
그러다가 정년을 맞았다. 그동안 정열적으로 살았던 것이 허탈했고, 뭔가 해놓은 것이 없어 보였다. 어느 날 우연히 불교를 만났다. 지나버린 삶보다는 남은 삶을 잘 살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동안 받으며 살았으니 이제는 이웃에게 회향하며 살자고 발원했다.
‘곱게 늙으려면 불교수행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자 열심히 정진하고 실천에 힘썼다.
정 학장은 불교대학과의 만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고, 함께하는 도반들을 만날 수 있었다.
평소 마음이 헤이해질때면 생명과 평화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탁발순례중인 도법 스님을 떠올리곤한다.
“불교는 상생(相生)으로 모든 이가 서로 행복을 추구하는 인드라망적 생명관과 실천행을 펴고 싶다”는 정 학장의 뜻을 스님이 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원각사 선우회장으로 취임한 정 학장은 100일기도를 했다. 불교와의 만남으로 못다채운 삶의 일부분을 많은 부분 채워졌음을 감사하는 기도였다.
“공부하는데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하나하나 만족하며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