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고마워서 어쩐데….”
“아닙니다, 어르신. 이렇게 찾아와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르신과 봉사자가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연신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서로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이들을 행복하게 만든 일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봄가뭄 속에 봄비가 촉촉이 오던 3월 23일, 충북 제천시 덕산면 덕산복지회관에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의료봉사 임시 진료소가 차려졌다. 임시라고는 하지만 진료소에는 양방ㆍ한방ㆍ여성 의료서비스와 혈압ㆍ혈액ㆍ당 검사를 비롯한 검진절차는 물론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 및 안경 배포까지 가능하도록 알차게 꾸려졌다. 최고로 손꼽히는 의료인들의 봉사모임인 전국병원불자연합회(회장 류재환, 이하 병불련) 소속 회원 30여명이 ‘춘계 연합의료봉사’ 타이틀을 달고 제천 덕주사(주지 원경)가 주최한 ‘행복 속으로 가는 의료봉사’에 참여해 힘을 보탰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조계사불교대학 기본교육이수자 모임 약사보리회와 기업체 고려아카데미, 덕주사신도회까지 합세했다.
이날 봉사는 10시부터 시작됐지만 지역 어르신들은 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1시간가량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어르신들에게 의료봉사는 절실히 기다리던 ‘단비’와 같았던 것이다.
“어르신 어디가 편찮으세요?”
“요즘 팔다리가 쑤셔 잠을 못자겠어요. 나이 먹으니 안 아픈 데가 없어요, 그려.”
“혹시 혀가 마르거나 하는 건 없으세요? 어디, 맥 한 번 짚어봅시다, 어르신.”
며느리와 단 둘이 살고 있다는 김순예(88) 할머니는 관절염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단다. 너무 멀어 병원 가기가 힘들다는 김 할머니는 “이런 의료봉사가 자주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선생님들께 자주 좀 오시라고 말씀드려달라”고 넌지시 부탁하기도 했다.
인근 마을에서 문구점을 하고 있다는 정이(92) 할머니는 의료봉사 소식을 듣고는 가게 문도 닫은 채 지팡이를 짚고 진료소를 찾았다. 또한 김종걸(70) 할아버지는 “백내장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퇴원하고는 병원에 가보질 못했다”며 진료소 덕분에 한시름 놨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편 진료소 한쪽에서는 가위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 압구정 ‘유병곤 헤어살롱’ 유병곤 원장이 아들 성재(11)와 함께 봉사현장을 찾아 할머니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 원장은 “영업 하루 포기하고 왔다”며 씩 웃고는 할머니들의 머리카락을 세심하게 손질했다. 아들 성재도 아빠의 활동을 지켜보며 뿌듯해 했다.
시골에서 행사가 열리면 다 그렇듯 의료봉사도 꼭 마을잔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덕주사신도회에서 떡ㆍ과일ㆍ차 등 간소한 먹을거리와 제천지역 나물향기를 담뿍 머금은 질박한 비빔밥을 준비, 이곳을 찾은 어르신들의 입맛을 돋웠다. 또한 국악인들도 함께 이 자리를 찾아 우리 가락의 흥겨움이 담긴 ‘아리랑’ 등을 어르신들에게 선사했다.
요즘은 시골 마을이라도 살기 불편하지 않다고들 한다. 도시서 살던 사람들이 ‘웰빙’을 이유로 시골살이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시골’은 아무리 도로가 닦이고 건물이 바뀌어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시골 어르신들의 순박한 미소가 바뀌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시골 어르신들의 갈라진 손끝조차 어루만져줄 의료시설이 없다는 사실은 영 마음이 쓰인다. 일산한방병원 구병수 원장이 “어르신들을 진맥해 보니 의외로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아 놀랐다”고 걱정하며 “토요일까지 세미나 등으로 너무 바빠서 의료봉사를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어르신들의 상태를 보니 이곳에 오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다.
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덕주사 주지 원경 스님은 “10개월간 주지 소임을 맡아 살펴보니 도농간 의료격차도 있지만 시골 분들이 병원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올 수 있는 행사를 열면 어르신들도 편안하게 생각하신다”며 이것이 바로 시골 사찰에서 할 수 있는 포교라고 강조했다.
‘행복 속으로 가는 의료봉사’는 앞으로도 제전시 11개 면을 순회하며 3개월마다 한 번씩 열릴 예정이다. 병불련도 이 의료봉사에 힘을 합칠 뜻을 전달했다. 병불련 류재환 회장이 “불자로써 불교 정신에 입각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병불련 회원 모두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스님과 의논해 정기적으로 이 곳 어르신들의 건강을 돌봐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날 어르신들의 행복한 얼굴이 처음 만난 병불련 회원들에게 뿌듯함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이날 의료봉사 현장을 통해 사는 곳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행복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