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달빛에 의지해 밤길을 걷는 이가 많지 않다. 하지만 캄캄한 시골길이나 가로등 없는 길을 걸을 때면 달빛이 매우 절실해진다. 달빛은 햇빛처럼 강렬하지 않지만 은은하게 앞길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법인 진각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미혼모자공동생활시설 ‘달빛둥지’는 그 이름처럼 은은한 밝음과 온기를 가졌다. 달빛둥지에서는 아직 사회에서 완전히 인정받지 못한 출산 미혼모들이 자녀를 양육하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달빛둥지에서는 ‘100일 잔치’가 열렸다.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 4명 중 2명이 100일을 맞았기 때문이다. 조금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는 이곳을 3월 25일 찾아가봤다.
달빛둥지에 도착하니 엄마들이 한창 아이들을 재우고 있었다. 4명의 아이가 함께 일렬로 누워있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아이들은 각각 3살~4개월 정도 연령이며, 대장, 미소왕자, 모자공주, 까만콩 등으로 불리고 있다.
달빛둥지가 설립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진각복지재단이 종단 주력 복지사업 중 하나로 채택해 서울 성북구의 주택가에 집을 마련, 미혼모들을 위한 자체 시설을 준비했다. 현재 2개 층 건물에 미혼모자 4가구 8명이 입주, 생활하고 있다.
달빛둥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진각복지재단 직원들과 이미향 원장의 고민이 컸다. 불교계에서 비슷한 시설조차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달빛둥지는 수도권 내에 거의 유일한 불교계 미혼모시설이다.
“사실 이웃종교에서 벤치마킹을 많이 했습니다. 수녀님들께서 이 사업을 내실 있게 잘 이끌고 계시더라고요. 가톨릭의 지원체계, 후원이나 바자 등도 많이 참고가 됐습니다.”
현재 달빛둥지가 하고 있는 일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출산시설에서 자녀를 낳은 미혼모들 중 가족들에게도 돌아갈 수 없어 막막한 입장에 놓인 미혼모들이 마음 편하게 아이를 기를 수 있도록 의식주에 걸친 모든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달빛둥지’와 같은 미혼모시설이 굳이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하면 미혼모의 개념을 ‘철없이 덜컥 아이부터 임신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혼모시설에서 입소자들을 만나보면, 이런 생각이 ‘편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달빛둥지에 입소한 미혼모들은 충동적일 수 있는 10대가 아니라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성이다.
최영실(29ㆍ가명)씨는 부산에서 아들 지호(생후 4개월)를 낳아 서울에 올라왔다. 최씨는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상대방 남자가 모르도록 숨기다가 부산 한 시설에서 아이를 낳았다. 최씨는 상대방 남자로부터 스토킹을 비롯한 신체적ㆍ정신적 피해를 받은 적이 있어 현재도 숨어 지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씨는 좌절하지 않는다. 타고난 성품도 밝지만 ‘달빛둥지’를 통해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아들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며 들뜬 마음이다.
“제가 여러 시설의 도움을 받아 보니, 저도 받은 만큼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복지 쪽으로 공부를 해보려는 계획을 갖고 원장님과 계속 상담중이에요.”
최씨의 말에서 달빛둥지에서는 아이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지원까지 힘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빛둥지가 무작정 퍼주기 식의 복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혼모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아이와 함께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달빛둥지에서 느껴지는 아쉬움도 있다. 달빛둥지는 ‘중간’시설이다. 즉, 법적으로 미혼모들이 1년 이상(이유가 타당할 경우 3개월씩 연장할 수 있음) 머물지 못하는 시설인 것이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내야 스스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텐데 싶었다. 이미향 원장의 생각도 그렇다.
“현재 체제로는 미혼모들이 느낄 불안감이 너무 큽니다. 출산기관부터 중간관리기관, 자립기관까지 모두 연계돼야 미혼모들이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달빛둥지를 도와줄 수 있는 연계기관이 많지 않다는 점도 아쉽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의료시설과의 연계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미혼모들에게 검정고시 또는 자격증 수험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자원봉사자 수급도 시급하다. 이들에게는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자격 취득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기 때문이다.
“우리 시설은 아직 출발선에 있습니다. 현재 불교계 내외의 여러 곳과 소통하려 노력 중입니다. 불교계에서 미혼모들을 위한 좋은 의견을 많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있는 가족들도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바라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