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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성대 예술대학원장 이기향 교수는 미국 중부 인디애나 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이국생활의 외로움에 지쳐 있을 때 한줄기 등대의 빛처럼 용기를 북돋아 준 가르침을 접했다. 미시간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달라이 라마의 제자 마하 부르스 스님에게 배운 ‘공(空)의 철학’ 이었다. 그에게 그것은 단순한 비움이 아니었다. 제 멋대로 빚어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삶의 원리였다. 또한 본능에 길들여진 마음은 집착할수록 행복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과 모든 현상에는 실체가 없듯이 욕망도 마음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을 가슴에 차곡차곡 새긴 이 교수는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접한 ‘공’의 가르침을 주제로 한 의상 작품 작업에 몰두했다. 3년만의 결실이 비로소 일반에게 선보인다.
3월 7일부터 18일까지 광화문 갤러리서 열리는 ‘아(我)! 나, 훔쳐보기-moving image 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디지털영상과 바디페인팅, ‘의상’ 등의 오브제들이 함께 유기적인 관계를 이끌며 ‘공’의 개념을 조형적으로 펼친다.
마치 전시장에 들어서면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사실 꼼꼼히 뜯어보면 패션쇼 무대다.
전시는 ‘공’의 개념을 3가지 주제로 나눠 구성한다. 첫 주제는 ‘공’과 상반되는 ‘색(色)’을 통해 감각적 현상의 본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아귀(중생)가 욕망이란 고통의 씨앗으로 불행을 잉태하게 되는 모습을 표현한다. 아귀의 존재는 벌거벗은 실체를 상징한다. 그래서 모델의 알몸에 ‘욕망과 고통’ 등 내면을 상징하는 감로탱을 바디 페인팅 기법으로 그렸다. 그래서 제 1주제는 ‘색의 세계-욕망과 고통’이다.
2주제에서는 공 개념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카메라의 즉물적 속성을 이용해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대상의 실제 모습을 기록해 본질에 다가서게 했다. 이때 카메라 렌즈는 실상을 기록하는 눈을, 나의 눈은 고정 관념의 눈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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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제 공 개념의 체험과 습득에서는 제1주제와 제 2주제에서 관람한 내용을 토대로 한 체험의 장을 마련한다. 상(像)의 드러남과 사라짐에 따른 이미지 변화의 관찰을 설명한다. 시시 때때로 변화하는 내면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외에도 ‘요리조리 끼워보기’ 전시실에서는 관세음보살, 아귀가 그려져 있는 의상을 입은 행위예술가가 여러 개의 구멍에 목과 팔, 다리를 자유자재로 끼워 실루엣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옷이 꼭 입는 존재라는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이기향 교수는 “이번 전시는 불교적 콘텐츠의 종합적인 예술성을 선보이며, 욕망과 집착속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공’의 철학을 통해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싶었다”며 “나눔을 실천하는 공익 차원에서 이번 전시 입장료 수입은 미혼모 시설에 기부해 전시 주제인 행복 나눔을 실천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개막일인 3월 7일 오후 5시 부터는 ‘요리조리 끼워보기’ 퍼포먼스도 함께 열린다. (02)760-4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