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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사찰별 방재 매뉴얼부터 만들어야
집중기획 사찰목조문화재는 안전한가
# 3월 5일 새벽 3시, 충청도 000 사찰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범종각 내에서 최초 발생한 화재는 열감지기에 의해 인근 소방서로 자동 신고됐고, 동시에 경내에 화재경보가 울렸다. 주지스님 이하 대중들은 각자 소지하고 있던 ‘재난시 임무카드’를 꺼내 확인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A 스님은 소화전으로 뛰어가고, B 스님은 경내 외곽의 방화수 탱크로 달려갔다. C 스님은 소화기를 들었고, E 처사는 소화기 용량이 부족할 것에 대비 다른 전각의 소화기 여분을 범종각 인근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화재 장소를 확인한 방재대장은 매뉴얼에 따라 화재 진압 지휘를 하며 배치된 인원을 점검했다. 확인해보니 D 스님이 없었다. 주지스님이 방재 매뉴얼 조직도에 따라 대체 인력을 알아보던 순간, 외부 연락을 담당하던 F 처사가 D 스님의 임무를 위해 법당으로 달려왔다. 10여분 후 소방차가 출동했을 때 화재는 진압단계였고 다행히 법당은 큰 손실을 입지 않았다. 물론 방화용의자는 몇일 후 녹화된 CCTV를 증거로 검거됐다.

방재 교육과 방재 설비 그리고 방재 매뉴얼 모두가 완벽하게 갖춰진 때를 가상한 예다. 현재 이와 같이 방재에 나설 수 있는 사찰은 몇 곳이나 될까? 본지 확인 결과 개별 방재 매뉴얼을 갖춘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동안 국가나 종단 차원에서 방재 매뉴얼이 없던 것은 아니다. 조계종 차원에서 2006년 준비된 매뉴얼은 시안으로 실제 아무런 도움이 못된다.

2005년 12월 문화재청은 ‘문화재별 화재 위기 현장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중요건조물문화재, 사적지 내 문화재, 동산문화재 등의 화재 시 활용하도록 제공했다. 산중 사찰의 산불 피해를 막고자 산불재난에 대해서도 별도의 매뉴얼을 제공했지만, 문화재청이 제공하는 매뉴얼은 정작 화재 시 아무 쓸모가 없다. 문화재청 매뉴얼에는 화재발생시 행동요령에 대해 ‘신속하게 신고하고 안전조치를 취한 뒤 침착한 소화 활동을 통해 주요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 등의 상식적인 문구와, ‘화점(火点)에 접근 시 낮은 자세를 취하도록 한다’ 등의 일반적 지침만 있다. 목조건축물에 맞춰 발화시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등의 실제 화재 시 필요한 정보는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2월 24일 문화재청이 향후 2년 안에 목조문화재 124곳에 대한 첨단방재시스템을 조기구축 하고, 문화재 화재 대응 매뉴얼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또 소방당국 등 관련 기관끼리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정밀실측도면 등 문화재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겠다고 나섰다.

방재 매뉴얼 작성은 왜 필요할까? 매뉴얼은 특정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모아놓은 책자다. 노하우를 공유한다는 의미도 있다. 방재 매뉴얼을 작성하면 평시 준비는 물론 위급시 대처 원칙을 정할 수 있다. 매뉴얼에 따라 소신 있는 행동도 가능하며 책임소재도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방재 매뉴얼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미국의 경우 조직 구성원의 책임 및 단계별 행동절차 등에 중점을 두고 각 상황별 대응방안보다 진행단계별 스탭의 역할을 위주로 정리했다. 일본은 시나리오 별로 개인 행동요령이 상세히 논의돼 위급시 매뉴얼만 갖고도 초동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매뉴얼 도입 초기단계에서는 일본과 같이 행동을 규정해야겠지만 차츰 미국처럼 단계별 스탭의 역할을 명시해 규정보다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효성 있는 사찰 방재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사찰 정밀실사가 우선이다. 김봉열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사찰 방재 매뉴얼은 전체 사찰에 대한 정밀실사 후 개별 사찰 특성을 감안한 유형별 매뉴얼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매뉴얼에는 정밀실사 후 실측도면, 평상시 방재설비 설치 규정과 문화재 책임관리 주체가 명시돼 있고 방재훈련 절차 등을 포함해야 한다. 또 위급상황을 대비해 여러 시나리오가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현 위원(문화재위원회, 前 동국대 교수)는 “사찰 방재 매뉴얼의 행동요령은 예방과 초기진화로, 방재설비는 건축물 특성 감안한 소방약재와 소방기구 선택으로 나눠 정리하면 좋을 것”이라 말했다.

숭례문 참사 이후 조계종 문화부장 수경스님은 “사찰 상황에 맞는 방재 매뉴얼을 만들고, 화재 시 현장을 지휘할 총책임자를 두고 평상시 방재훈련을 실시하는 등의 지침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숭례문은 갖지 못했던 관리법령, 전문가, 매뉴얼을 전국 사찰이 얼마나 빨리 갖출 수 있을까?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8-03-04 오전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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