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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차(茶)의 나라 스리랑카. 스리랑카는 불교를 국교(國敎)로 삼고 있는 불교국가일 뿐 만 아니라, ‘실론 티’로 대표되는 뛰어난 홍차문화를 가지고 있는 ‘차의 나라’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은 지난 1월 19일부터 2월 3일까지, 스리랑카의 불교와 차 문화를 찾기 위한 보름간의 여정에 올랐다. 스리랑카의 불교와 차 문화를 소개하는 박 소장의 글을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주>
‘인도의 눈물’이라는 별호를 가진 천혜의 땅, 스리랑카는 실론 홍차(Ceylon black tea)가 매우 유명하다. 오랫동안 차와 불교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스리랑카를 생각하면 늘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이 있었다. 스리랑카에는 홍차가 나오기 전부터 차가 있었을까, 사원에서 스님들이 차를 마시는가 하는 점이다. 달마 이후 불교가 차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스리랑카 차를 참고해 볼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지난 1월 19일, 마침내 기회가 왔다. 스리랑카에서 오랫동안 불교를 연구해 온 임훈기 선생 내외가 우리 일행을 초청해 준 것이다. 그들은 현지 사정에 밝고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이며, 스님들과 교류가 깊다하니 기대가 컸다. 대개 사람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들뜬 호기심을 가지게 마련이며, 결국 조급한 열정은 용기를 자극하여 어디든지 떠나야할 이유를 만든다. 사람들은 길을 통해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길을 종횡하는 이들에 의해 새로운 문화가 전파되었다. 길은 문화를 이어주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콜롬보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을 넘겨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막 도착한 낯선 인파들이 입국대 주변으로 몰리고 더러는 긴 여행에 지친 듯 연신 하품을 해댄다. 공항 벽에 걸렸던 차밭 사진, 타밀 여인의 미소 속엔 애잔한 슬픔이 어려 있다. 입국심사대 검사관들의 무표정한 얼굴, 느린 손놀림에서 이국임을 실감하였다. 추운 곳으로부터 달려 와 낯선 곳에 선 우리 일행, 일행이라야 겨우 나와 지인뿐. 간신히 짐을 수습하여 나온 출구엔 몇 시간째 우리를 기다린 임 선생이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긴다.
알싸한 냄새와 뒤엉킨 달달하고 짙은 열대 꽃향기, 열대의 후덥지근한 열기가 녹녹한 기세는 아니다. 어수룩하고 어둑한 도로와 건축물들, 분초를 다투는 긴장감이나 번들번들한 도회의 세련과는 거리가 멀다. 60년대 말, 우리의 거리 풍경과 닮았다. 이렇게 이 땅과의 첫 대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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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이미 창밖이 환하다. 침대에 쳐진 모기장, 벽에 붙은 작은 도마뱀은 이 집의 오랜 주인인 양 미동조차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이 생명이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아마도 불교의 영향과 자연에서 터득한 지혜인 듯하다. 특히 열대 지역인 이곳의 가옥은 바람이 잘 소통되고 햇빛을 최대한 차단하는 구조로 천장이 높다. 아래층은 거실 같은 개념이고 주로 이층에 침실과 서재가 있다. 습하고 무더운 환경에서 더위와 동물의 피해를 막기 위한 방책에는 삶의 지혜가 묻어 있다.
웬만한 경제력을 갖춘 집에는 풀장이 있는 것도 이곳의 특징. 이들은 주로 코코넛 우유를 넣고 만든 다양한 카레, 눈을 밝게 한다는 나물, 삼바, 키키리삼바라고 부르는 찰기 없는 쌀로 만든 밥을 먹는다. 밥을 먹을 때 오른손을 사용하며, 오른손을 중시한다. 간혹 귀한 손님이나 특별한 날에는 쌀국수를 먹는다. 하지만 쌀가루를 만드는 일로부터 작은 틀에 국수를 뽑는 일 등을 모두 손으로 만든다니, 완벽한 ‘슬로우 푸드’다. 특히 음식을 조리할 때 토기로 만든 투박하고 정감 있는 뚝배기를 사용한다. 이 질박한 그릇에 담긴 성의 있는 음식들은 재료에 따라 형형색색의 조화로운 빛깔로 들어난다. 이들은 조금은 가난하지만, 물질에 찌들고 살찐 가여운 도회인과 다른 기품이 있다. 오래 전 잊어버린 진실한 생활의 리듬들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한편 집안에 부처님을 모시는 불단이나 수호신을 모시는 단이 있어서 꽃과 향을 올린다. 뽀야데이(15일)같은 특별한 날은 코코넛우유를 넣어 만든 밥을 부처님께 올리며, 이날은 휴일로 사원에 가서 부처님을 참배한다. 불교는 이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며, 그들은 부처를 닮고자한다. 어쩌면 불교는 이들의 고단한 삶을 지탱하는 자부심이며 긍지이다. 스리랑카를 불교국이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원의 부처님을 참배할 때 흰 옷을 입는 것이 상식이다. 부처님 앞에 가장 순결하고 깨끗한 모습이 되길 바라는 것이리라. 이들은 부처님께 꽃을 올리거나 음식, 혹은 향을 올린다. 경이로운 일은 부처님 앞에 놓인 공양물이나 막 올리려는 꽃에 손을 잠시 대기만하여도 함께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된단다. 사원에 들어 갈 때는 누구라도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들어가기 때문에 어느 사원이나 입구에는 어김없이 신발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다. 열대의 뜨거운 햇볕에 달구어진 돌 위를 걷는 일은 보통이 아니다. 발바닥이 뜨거워 도저히 걷기가 어렵다. 석굴사원에서 곤욕을 치르고 얻은 묘안은 양말을 준비하는 것.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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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남자들은 사롱을 입고 여자는 사리를 입는다. 스리랑카의 인종과 종교를 대략 살펴보면 국민의 대다수는 싱할라인이며 실론타밀족, 인디안타밀, 무어족, 무수림족으로 구성된 다종족 국가다. 인구의 대부분이 불교(69.3%)를 믿으며, 힌두교(15.5%), 가톨릭, 무슬림, 신교를 믿는다. 이들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지만 이들의 언어는 영국의 식민시대 영향으로 영어와 싱할라어를 공용하고 있다. 국민의 대부분이 의무교육을 받기 때문에 문맹이 거의 없으며, 교육열이 매우 높은 편이란다.
국민의 의료도 국가에서 책임을 진다. 이런 사회 제도는 일찍부터 비교적 선진적인 틀을 갖추었지만 오랜 내전과 정치적인 혼란으로 질적인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필자가 여행 도중, 갑자기 귀가 아파 가장 가까운 지역인 캔디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특이한 것은 의사가 직접 진료비를 받는다는 점이다. 오래전부터 의ㆍ약이 철저히 분업화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의료혜택은 제도적인 여건보다 시급한 것이 질적인 문제일 듯하다.
더구나 자치권을 주장하고 있는 북부 타밀족과 스리랑카정부 간의 갈등은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닌 듯,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형편이란다. 이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전역으로 확대일로에 있는 산발적인 폭탄테러는 정국을 더욱 불안케 하고 있었다. 수도인 콜롬보 거리에 총을 든 군인들이 늘어서 있고 거리곳곳에서 검문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런 정황에도 개의치 않는 듯, 마주치는 사람마다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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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기이한 풍경은 고개를 좌우로 살랑 살랑 흔들며 대화하는 광경이다. “그래 맞아”라든지 “좋다”라는 뜻이란다. 고개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에는 그들만의 특유한 유연성과 리듬이 있다.
한편 스리랑카에는 어디를 가든지 크고 작은 호수가 많다. 임 선생의 이야기로는 역대 훌륭한 임금들은 물을 잘 관리할 줄 알았으며, 특히 치수(治水)에 힘썼다고 한다. 열대지역에서는 물이 곧 생명임을 익히 알기 때문에 물을 잘 다루는 일은 이들의 오랜 전통이란다. 특히 야자수는 신이 내린 생명수란다. 무더운 열대기후를 견디는 힘이 야자열매에서 나온다고 믿을 만큼 야자나무가 주는 혜택은 무궁무진하다. 나무와 잎, 야자열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보배 중에 보배이다. 노란색의 야자는 음료용이며, 파란 색은 코코넛 우유를 만드는 조리용이다. 또 야자나무가 소금기를 좋아하여 들판이나 산간에 자라는 야자나무에 가끔씩 소금을 준다니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