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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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가운데서 한걸음 한걸음 역경 사업 펼쳐
불서를 만드는 사람들-동국역경원
역경위원들이 원활한 역경 사업을 위해 논의하는 모습.

합천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목판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알고 사랑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복판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환희심을 줄 정도다. 그렇다고 팔만대장경의 아름다움이 그 외형에만 있을까. 구슬과 같은 8만4000자가 그 속에서 꿈틀거린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전이어도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그 모든 한자를 읽자니 머리부터 아프다. 그 어마어마한 경전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옮기는 작업은 경전의 보배로움을 전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 일을 해내는 곳이 바로 동국역경원(원장 월운, 이하 역경원)이다.

2월 19일. 서울 충무로역에서 동국대 후문으로 올라가다 보니 학교테니스장 옆에 웬 허름한 건물이 하나 있다. 현재 동국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이 건물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물어보니 열이면 열, 고개만 갸우뚱 거릴 뿐이다. 결국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역경원’이라는 팻말이 붙은 방들이 몇 개 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역경원과 조우한 것이다. 누가 알든 모르든, 역경위원들은 이날도 치열하게 경전을 들여다보며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역경원은 1964년 3월 설립됐다. 지금은 아는 사람만 아는 기관이지만 설립 초기에는 열의가 대단했다.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을 한글로 옮기는 기관이라니, 엄청난 일을 수행하는 곳이라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고지원금은 물론 교계 각처에서 후원금까지 물밀듯 밀려들었다.

“당시만 해도 사회지도층에 불자가 많았어요. 또 책이 귀한 때라 불자들이 경전 한 권 갖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그러니 역경 사업에도 활기가 있었겠지요.”

동국역경원에서 25년째 근무하고 있는 박종린 연구원의 말이다. 이 말마따나 재가불자들의 기대감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역경사업 자체가 한자에 통달한 학자나 스님들만 읽을 수 있었던 경전을 대중화시키겠다는 선언이었을 테니.

그렇게 1980년까지 역경원은 80권의 한글대장경을 출간하며 신바람 나게 한글대장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시련은 있게 마련이다. 역경사업이 한두 해로 끝날 것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반에서도 종단에서도 역경사업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져 갔다. 몇 차례 지지부진하게 역경 사업이 중단아닌 중단이 되기도 하고, 1년에 7~8권씩 나오던 책이 고작 1권 나오기도 벅찬 시기도 거쳤다. 그런 지난한 세월을 이기고 2000년 완간된 것이 총 318권에 달하는 <완역 한글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 역경사업을 끝냈다면 역경원은 소임을 끝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역경원에서는 요즘 한글대장경의 오역과 오ㆍ탈자를 걷어내는 개정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역경을 하다 보니 작업이 다소 거칠게 이뤄진 부분이 있어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요즘 역경원 홈페이지(www.tripitaka.or.kr)에 접속하면 대장경의 내용을 컴퓨터 화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한글화 작업에서 나아가 시대에 맞게 전산화도 함께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2010년까지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 148권까지 작업을 마쳤다.

이렇게 한국사적으로도 가치가 큰 중요한 일을 해낸 기관임에 틀림없지만 역경원에 대한 대우는 말이 아니다. 역경원은 현재 종단 산하기관도, 학교기관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역경원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사도 잦았다. 박종린 연구원이 기억하는 것만 7~8회에 달한다. 그러는 사이 자료도 소실됐을 것이다.

가장 힘든 것은 역시 사람 문제다. 박종린 연구원처럼 25년이나 역경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사실 기적에 가깝다. 역경사업을 하려면 한자와 번역에 능숙한 고급인력이 필요하지만 부침이 심하다.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는 직장,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저야 이 과정을 수행이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만…. 우리 후배들이 나가려 할 때는 차마 붙잡지 못했습니다. 생활이 안 된다는데, 어떻게 남으라고만 하겠습니까.”

어떤 뚜렷한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 그래도 역경원은 한걸음씩 힘들게 나아가고 있다.

“불자들이 말과 글에 대해 소홀히 하는 풍토가 참 아쉽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경원이 왜 필요한지,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공감도 부족합니다. 역경원은 경전을 정리하고 모든 해설서의 근간이 되는 통일경전을 만들어내는 곳이 돼야 합니다. 기본이 있어야 응용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몽고 침략 시기의 고려인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그들은 하나의 획을 가다듬고 정리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이며 부처의 외호를 바라 마지않았을 것이다. 그 정신이 엄청난 세월을 뛰어 넘어 경전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경전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정신은 남아있다. 역경원이 오늘날 하고 있는 일의 참다운 의미는 경전을 지키고 현세에 쓰일 수 있게 만드는 바로 그 정신의 계승에 있지 않을까 싶다.
김강진 기자 | kangkang@buddhapia.com
2008-02-29 오후 8: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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