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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삶의 끈을 함부로 놓지 않아요.”
조용한 목소리로 전씨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느낀 감회부터 털어놓는다. 그가 죽음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꽤 된 일이다. 서울 성룡사 염불봉사팀 지장회 활동을 하면서 장례식장에 늘 드나들었다. 그러다 한 순간, 염불봉사에서 한 걸음 더 나가 호스피스 봉사를 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2000년부터는 천태종 니르바나 호스피스 교육부터 시작해 호스피스 이론을 섭렵하려 애썼다. 이제는 자신이 서울 광진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여성상장례사 강의를 할 정도가 됐다.
그의 호스피스 봉사는 어떤 단체에 매여있지 않다. 전씨가 한 번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그 유가족이 다른 임종직전의 환자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봉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간 대중도 힘들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자다가 한 밤중에 뛰어나가거나 새벽에 귀가하는 일은 예사다. 이렇게까지 ‘죽음’과 함께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싶은 의문까지 생긴다. 그는 “행복하다”고 응수한다. 정작 전씨가 생각하는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이란 단어를 금기시 하고 있어요. ‘부정탄다’며 할아버지 장례식장에 아이들은 데려오지도 않아요. 과연 이런 것이 정상적일까요. 삶과 죽음은 늘 함께 있는데요.”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 할수록 환자 가족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 가족과 환자 간에 갈등을 겪는 모습 등이 전씨의 과제로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요즘 아예 호스피스 활동을 ‘가족화해의 시간’으로 바꾸려는 노력으로 채우고 있다.
“봉사하러 가면 우선 가족들부터 안아줍니다. 그러고 나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계속 유도하지요. 그래야 돌아가시는 분도, 남는 사람도 후회가 없어요.”
봉사활동 경력이 쌓여 가면서 전씨는 또 다시 고민이 하나 생겼다. 호스피스 봉사와 함께 장례까지 이것저것 챙겨주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 것이다. 그래서 설립한 것이 2004년 ‘수인회’라는 상장례사업체다.
“돈을 벌 목적이라면 이 사업 말고도 할 것이 많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사업체는 봉사활동의 연계선상에서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의심을 눈길을 보내기도 했지만 전씨는 흔들리지 않고 사업체를 지키며 봉사를 계속해나갔다. 양심껏 대가를 받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무료 상장례의식을 지원해주는 사업체. 전씨의 꿈 속에서 커 가는 ‘수인회’의 모습이다.
전씨의 가방에는 항상 목탁과 염주가 들어있다. 언제 어디서 부고 소식이 들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상을 당했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는 것이 안타까워 그는 늘 준비를 하고 다닌다.
“제가 다니는 곳마다 가족이 화합하고 제대로 된 불교상장례문화로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제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똑바로 보고 생명의 존엄성을 기조로 하게 된다면 사회가 얼마나 평화롭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