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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 참사는 문화재 방재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온 국민이 문화재 보호를 외치는 가운데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목판이 일본인의 완상용 소품으로 전락한 사례가 발굴돼 큰 충격을 준다.
2월 27일 공개된 2개의 목판 작품은 모두 원형이 아니었다. 구한말 1899년(광무 3년) 완산(전주)에서 제작된 한석봉 초서 <천자문> 목판 4장은 일본식 소형 4각 화로인 ‘이로리’(41×41×34㎝)의 외곽장식 용구로, 한글소설 <유충렬전>의 목판 원판은 원형으로 재가공돼 일본 여인의 분첩(10.5×10.5×2.5㎝)이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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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봉 초서 <천자문> <유충렬전>을 공개한 이는 고판화 수집 전문가인 한선학 스님(원주 명주사 주지)이다. 군승 장교 출신인 스님은 평소 판화에 관심이 있어 수집했고, 수집품들을 모아 2004년 고판화박물관을 개관한 판화 전문가다.
일본식 화로로 변형된 ‘오륜행실도목판’을 2년전 공개하기도 했던 스님은 그 후로도 한국 목판 문화재가 장식용으로 일본에 많이 남아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국내 및 일본의 고미술상을 뒤지다 공개한 유물을 입수했다고 한다.
선학 스님은 “궁중판이나 사찰본 등과 달리 판매용으로 제작됐던 방각본의 보존은 부실했다. 한석봉 초서 <천자문> 목판은 방각본으로는 최초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함께 발견된 <유충렬전> 목판도 기존 발굴됐던 <삼국지> 목판 원판 1장 이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됐다. <유충렬전>은 구한말 출판된 완판본 한글고전 소설로 <조웅전>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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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유물에 대해 학계는 어떻게 평가할까? 선학 스님의 전언에 따르면, 남권희 교수(경북대 문헌정보학과)는 “조선후기 방각본 출판으로 유명한 전주지역에서 제작된 목판으로 지역사적, 서예사ㆍ판각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훼손된 유물 공개로 숭례문 참사와 더불어 문화재 보존에 대해 사회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