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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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불멸의 꿈’ 유적으로 남아
이집트의 고대왕릉 피라미드를 읽다

50대여 배낭을 메라
무자년 벽두, 4인의 50대가 배낭을 메고 이집트로 향했다. 20대의 전유물인 배낭여행을 중년 사내들이 겁 없이 흉내 냈다.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이국의 거리를 헤매는 중년의 모습은 약간 딱하다. 어색한 차림,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 탈북자 행렬 같고 낯선 행성에 던져진 외계인 같기도 하다. 저마다 한두 가지 깨닫겠다는 각오, 새로운 모색을 통해 재충전하겠다는 속내는 서로 말하지 않았다.

나일강을 젖줄로 찬란한 고대문명을 일군 나라, 사막 한가운데 피라미드라는 불가사의를 축조한 나라. 염치는 소멸되고 몰염치가 들끓는 나라. 12시간 비행 끝에 수도 카이로에 도착했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어지럽다. 연중 강수량이 0~20mm이니 먼지마저 칼칼 팍팍하다. 15일 만에 이집트 남북을 종단하는 강행군이다. 10~15시간씩 열차를 타고 거기서 먹고 자길 여러 번 반복하니 조급증이 사라진다. 숙소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집트에는 찬란한 고대문명과 남루한 현실이 공존한다. 절대 권력의 흔적이 피라미드와 거대사원으로 남아있다. 50대의 배낭여행에는 또 다른 보람이 있다. 지천명에 이른 만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넉넉하다. 라면 한 젓가락일망정 상대의 그릇에 먼저 떠주는 지혜를 발휘한다. 인간이 동물로 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이성과 본능은 동전의 양면이다.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서로의 모습이 장하다. 장기 여행은 죽고 못 사는 애인끼리도 웃으며 떠나서 원수가 되어 돌아오는 예가 흔하다. 50대의 여행은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위기 대처에 여유로운 것도 강점이다. 마차꾼은 곧잘 엉뚱한 곳에 내려주고 가버려도, 열차를 놓쳐도 여유롭게 대처한다. 그보다 더 험한 세월을 거쳐 온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묵혀두었던 영어실력을 되살린 것도 소득이다. 고사 직전인 단어들이 날개를 달고 기억의 창고에서 퍼덕거리며 나온다. 기본영어가 진양조 가락으로 빗장을 열고나오니 이내 정통종합영어가 휘몰이 장단으로 춤을 춘다. 생존본능의 힘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머뭇거리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 군대 생활 이후론 배낭을 메어본 적이 없는 인사도 있었지만 건강하고 씩씩하게 돌아왔다. 여행이 주는 1차 선물은 자신감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이다. 2차 선물은 겸손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배려다. 가족과 이웃을 더욱 살갑게 사랑하겠다는 생각, 금수강산에 태어난 고마움을 배낭 가득히 담아 돌아왔다.


인류문명의 불가사의 피라미드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으로만 보아왔던 피라미드가 가장 먼저 발길을 끌었다. 인간의 의식세계, 상상력으로부터 벗어난 존재,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상태를 불가사의(不可思議)라 한다. 그 말의 기원은 불경이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부처의 지혜는 허공처럼 끝이 없고 그 법(法)인 몸은 불가사의하다’라고 했다. 호사가들은, 피라미드를 NO.1 불가사의라고 규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집트 전역에는 90여기의 피라미드가 있다. 그중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이 카이로 부근 나일강 서안에 있는 기자지구 피라미드들이다. 이곳에는 거대한 피라미드 세 개와 작은 피라미드 네 개가 있다.

피라미드(pyramid)는 정사각뿔 모양의 고대유적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다. 그리스어로 ‘삼각형 모양의 과자’를 의미하는 ‘피라미스’에서 유래했다. 고대 중국,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앙아메리카 등지에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고구려 태왕릉, 장수왕릉도 피라미드의 일종이다. 그러나 이집트 기자지구의 피라미드가 대표 격으로, 고유명사로 굳어진 느낌이다. 피라미드는 장례와 제사를 위한 건축물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다. 불가에서는 과보에 따른 환생을 믿지만 그들은 현세와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할 것을 믿었다. 무덤이란 죽은 자가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생활하는 공간이라 여겼다. 영원히 지속될 튼튼한 무덤이 피라미드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카이로 국립박물관에 보관된 수백구의 미이라 중에 벌떡 일어난 이는 아직 없다.

피라미드는 고왕국(제3왕조~제6왕조) 창건 때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2700년 동안 계속 지어졌다. 제4왕조(기원전 2613~2498) 때가 피라미드 건설의 전성기였다. 기자 피라미드 역시 이 시기에 건설된 것이다. 기자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이다. 거대한 크기와 복잡한 내부구조 등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힌다. 쿠푸왕은 스네프르왕의 아들로 당시 단일 건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피라미드를 세웠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료는 없다. 쿠푸왕의 뒤를 이은 카프라왕, 멘카우라왕도 기자에 피라미드를 세웠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제1피라미드(혹은 대피라미드), 카프라왕의 피라미드는 제2피라미드, 멘카우라왕의 것은 제3피라미드로 불린다.

피라미드는 독립구조물이 아니라 건축물 복합체의 일부였다. 사막 높은 곳에 구획된 경내에 자리 잡은 피라미드 옆에는 장례, 제사를 위한 신전이 있고 둑길을 따라 내려가면 계곡사원으로 불리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경작지 끝에 지어졌고 운하를 통해 나일강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집트에서 90여기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으나 대부분 폐허더미로 변했고 부장품은 오래 전에 도굴되었다.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 중에서도 피라미드 단지의 형태를 온전히 지니고 있는 것은 제2피라미드뿐이며 다른 피라미드의 부속건물은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왜 불가사의인가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원래 높이는 146.5m였으나 꼭대기 9m 정도가 떨어져나가 현재 높이는 137m이다. (63빌딩의 높이는 249m이다) 각 변의 길이가 248m, 경사면의 각도는 52도이다.

대피라미드는 약 5000년 전에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다. 신비론자들은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 건설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화성의 피라미드를 지구에 복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복제한 목적은 외계와 연락하기 위한 송수신기지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불가사의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몇 가지 추려보면 이렇다. 첫째, 부지 선정에 관한 신비다. 현대 건축가들은 100년에 15cm 정도 침강하는 땅은 고층 빌딩 부지로 부적합하다고 한다. 미국 국회의사당은 200년 동안 12cm 정도 침강했다. 대피라미드의 돌무게를 합산하면 685만 톤이다. 그것은 5000년 동안 1.25cm 가라앉았다. 지진과 지반운동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이다. 1992년 이집트에 강도 6의 강진이 발생한 적이 있다. 400여명이 사망하고 만여 명 부상, 수백채의 가옥과 건물이 무너졌다. 그러나 피라미드 속에 있던 관광객들은 미동도 느끼지 않았다.

둘째, 피라미드 건설에 소요된 돌의 공급, 다듬는 문제도 불가사의하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쌓는데 소요된 돌은 높이 1m, 폭 2m, 평균 무게 2.5톤짜리 돌 약 250만 개다. 이것을 약 1000km 떨어진 아스완 지역에서 가져왔다. 돌을 나르는 수송로를 만드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당시는 수레나 말을 이용한 수송방법을 모르던 시절이다. 지레나 굴림대, 밧줄이 운송수단이다. 그렇게 옮긴 돌을 연인원 10만 명이 20년 걸려 건설했다. 돌은 다듬는 문제도 불가사의하다. 기원전 2600년이면 청동기 시대다. 철제 도구가 없던 시절이다. 청동 연장을 사용하여 채석장에서 2.5톤~10톤 나가는 돌을 오차 없이 자르고 다듬었다. 왕묘실에 있는 돌은 무게가 40톤이나 되는 화강암이다. 불가능 혹은 불가사의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클레오파트라의 사랑과 야망
1963년 만든 미국 영화 ‘클레오파트라’. 엘리자베스 테일러(클레오파트라)와 리처드 버튼(안토니우스)의 명연기로 스크린을 달구었다. 그녀는 이집트가 로마에 병합되기 전까지 이집트를 다스린 마케도니아 왕조의 마지막 군주다. 훌륭한 군주로서의 명성보다는 빼어난 미모와 격렬한 사랑의 화신으로 그녀를 기억한다. ‘육감적인 입과 단호한 턱, 부드러운 눈매, 넓은 이마, 높은 코를 가졌으며 목소리는 줄이 많이 달린 현악기가 울리는 음색이었다(그리스 전기작가 플루타르크).’ ‘그녀는 당대 가장 위대했던 로마인 두 사람,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았지만 세 번째 사람 때문에 파멸했다(로마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

로마의 장군 시저는 이집트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이집트를 손에 넣고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진다. 영웅 기질을 타고난 시저는 이집트를 평화롭게 통치하지만 그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음모를 꾸민다. 시저의 아들 부루투스는 시저를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한다. 아버지를 배신할 운명을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인다. 시저는 뛰어난 통솔력을 가졌지만 자신을 배신할 세력이 바로 자신의 부하들과 아들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다. 결국 부루투스는 시저에게 칼을 꽂는다.

시저의 죽음으로 이집트는 혼란에 빠진다. 이를 평정하기 위해 안토니우스가 나선다. 재치와 용기, 카리스마로 무장한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혼란을 수습하고 클레오파트라의 사랑까지 얻는다. 그러나 계속되는 주변 국가와의 마찰과 부하들의 반란음모로 안토니우스는 몰락한다. 이집트는 다시 혼란에 빠진다.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매력과 정치력을 모두 발휘했음에도 후원할 상대를 2번이나 잘못 고른 셈이다. 실권은 옥타비아누스에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다시금 매력을 발휘해 옥타비아누스를 유혹했지만 실패한다. 파멸의 징조를 간파한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을 안토니우스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한다. 왕가 대대로 내려오는 장신구들을 모두 걸친 채 황금침대에 누워 이집트 왕가의 상징인 코브라에 물려 죽었다. 클레오파트라다운 화려한 죽음이었다. 22년간 여왕으로 군림하다 39세에 죽었다. 소원대로 그녀는 안토니우스와 함께 묻혔다. 그들의 무덤은 알렉산드리아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야망과 사랑을 온몸으로 실현한 그녀의 뒷모습은 허망하기까지 하다.

이집트 문명의 젖줄, 나일강
이집트는 국토의 한 가운데를 나일강이 남북으로 흐른다. 그래서 이집트 여행은 편하다. 나일강을 따라 모든 유적이 늘어서 있다. 나일강변을 벗어난 동서부 지역은 모두 사막이다. 도시와 문명은 6600km인 나일강변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6000만 명의 인구도 나일강변에 살고 있다.

일 년 내내 거의 비한방울 내리지 않고 국토의 95%가 사막인데 어떻게 찬란한 문명을 창조했을까. 나일강 상류인 아프리카 지역의 풍부한 강수량 덕분이다. 이집트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지만 나일강은 언제나 푸르게 넘실대며 흐른다. 아프리카 지역에 우기가 되면 나일강은 범람한다. 6월말경이 가장 심하다. 나일강이 범람하면 주변 토지는 구획이 사라진다. 측량 기술이 발달한 것은 나일강 범람 때문이다. 범람이 끝나면 측량을 해서 내 땅, 네 땅을 다시 구분한다.

그러면 나일강의 범람은 재앙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축복이다. 상류에서 쓸려온 유기질이 풍부한 흙더미가 그대로 침전되어 거름이 필요 없는 옥토가 된다. 작물을 수확할 때까지 농토는 적당한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 물을 주지 않아도 풍년이 보장된다. 홍수 때 한강, 낙동강의 범람으로 수해의 추억이 있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축복이다.


나일강의 범람은 이제 종지부를 찍었다. 1902년 나일강 상류에 아스완 댐이, 1971년 더 위쪽에 아스완 하이댐이 건설되었다. 댐에 가두어진 물은 거대한 호수를 이루었다. 나세르호이다. 댐을 만들면 수몰지구가 생긴다. 수몰예정지구에 사는 주민들은 정든 땅을 버리고 이사를 가야한다. 고대 유적 또한 예외가 아니다. 수단 국경 근처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유적인 아부심벨이 대표적인 수몰 유적이다.

아부심벨 구하기
아부심벨 지역에는 위대한 전사이자 건축가인 람세스2세가 지은 두 개의 대신전이 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신전이고 다른 하나는 왕비 네페르타리와 사랑과 미의 여신 히토르를 위한 신전이다. 람세스2세는 영화 <십계>에서 율 브리너가 역을 맡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집트의 파라오(왕)다.

람세스 대왕이 건설한 아부심벨 신전은 아스완 하이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유네스코는 인류 문화유산을 구하기 위해 1960년 범세계적인 운동을 전개해 1964년 유적을 구출하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대규모 작업을 위해 이집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스웨덴에서 모인 3000명의 전문가로 구조팀이 구성되었다. 신전의 조각과 장식을 2000개의 조각으로 잘랐다. 해체된 돌의 한 개 무게가 10~40톤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복원작업은 5년이 걸렸다. 소요된 비용은 4000만 달러였다. 새 신전은 물이 차지 않는 200m 위 새로운 터에 완벽하게 복원됐다. 어림잡아 석굴암의 천배쯤 되는 규모의 석굴신전을 훼손 없이 옮긴 것이다.

여행 여담
여정은 나일강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았다. 카이로에서 밤기차를 타고 15시간 걸려 아스완에 도착. 아부심벨까지는 사막 한가운데로 난 도로를 따라 버스로 4시간. 다시 아스완으로 돌아와서 배를 타고 2박3일 나일강 크루즈로 룩소르로 가는 도중 수시로 배에서 내려 콤옴보, 애드프, 에스나를 들렀다. 룩소르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카이로로, 거기서 버스로 수에즈, 알렉산드리아 등을 둘러보았다.

환전할 때 작은 액수의 이집트 화폐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10파운드(1700원), 5파운드짜리가 좋다. 왜? 물건을 사거나 택시를 타면 거스름돈을 줄 생각을 않는다.

유럽에 가까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약간 활기차고 개방의 냄새가 나는 여성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철갑처럼 검정색 히잡과 차도르, 부르카를 두른 무표정한 여성들뿐이다.
이집트=이 우 상<소설가> |
2008-02-08 오전 8: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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